남국의 살진 갯내음을 풍기는 상자. 지인이 제주 여행을 하면서 맛본 싱싱한 생선을 가까운 이웃과 나누고 싶어 조금 보낸다고 했다. 잘 손질한 고등어와 갈치가 진공 포장돼 있었다. 보내준 분의 고마운 마음씨가 더해 얼마나 감동적인 맛일까. 갈치와 고등어는 서민에게 익숙한 생선. 그동안 우리가 즐겨 먹었던 생선이라면 명태나 오징어가 있고 꽁치도 뺄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 바다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생선이 되고 말았다. 겨울이면 그토록 많이 잡혔던 동해의 명태가 우리 밥상에서 멀어지고 러시아, 알래스카산으로 대체한 지 오래다. 명절 때 제상에 올렸으며 집안의 어른인 할아버지, 아버지 밥상에 올랐던 조기. 알을 가득 품고 연평도까지 찾아왔던 조기를 대만 근처까지 내려가 마중을 해야 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알을 가진 조기를 보기 어렵고 채 자라지 않은 조기를 잡으니 살진 암조기가 귀해졌다. 그에 비하면 고등어, 갈치는 변함없이 우리 밥상에서 삶에 지친 입맛을 되살려주는 서민적인 생선. 고등어의 참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살 오른 가을 고등어 토막을 석쇠에 끼워 숯불에 올려놓는다. 금세 지글지글 연기가 피어오르고 기름이 녹아 흐른다. 불길이 오르면 타지 않게 자주 뒤집어야 한다. 자칫 한눈을 팔다 보면 껍질이 석쇠에 달라붙어 예쁘지 않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우려면 약한 불에서 수시로 뒤집어주어야 제맛을 낸다. 생선은 껍질이 더 고소하다. 어느 만석꾼 갑부가 고등어 껍질 맛에 빠져 재산을 탕진했다고 하지 않던가. 상추쌈을 펴고 하얀 쌀밥 위에 잘 구운 생선살을 얹어 먹는 맛. 덜 익은 풋고추 조각을 곁들이면 알싸한 맛을 배가시킨다. 둘러앉은 가족들 얼굴에도 정겨움이 묻어나는 평화로운 식사시간이다.
맛있는 것을 이웃과 나누려는 거룩한 마음. 보내준 분의 고운 마음씨까지 함께 하는 식사시간이야말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고소한 생선살에 짙게 스며든 마음까지도.
오병훈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