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칠링 이펙트

입력 2020-10-10 04:05

칠링 이펙트(chilling effects)는 미국 법조계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소송 보복이 두려워 정당한 권리 행사조차 주저하게 만드는 현상을 일컫을 때 쓴다. 특히 명예훼손으로 피소될 것을 우려해 할 말을 하지 못하는 등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때 사용한다. 후과가 무서워 일종의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현상이다. 미 국가안보국 요원이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2013년 당국의 개인정보 불법수집 실태를 폭로했을 때도 이 말이 거론됐다. 당시 폭로로 당국이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특정 단어를 찾아본 사람들을 조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위키피디아에서 갑자기 ‘테러’나 ‘보안’ 등의 단어를 찾는 사람들이 급감했는데, 이 역시 칠링 이펙트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을 ‘조국 똘마니’로 불렀다는 이유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을 두고 칠링 이펙트를 노린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금태섭 전 의원은 8일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 한 명을 겨냥해 소송에 시달리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입을 닫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김 의원은 “진 전 교수는 일반 국민과 달리 매우 강력한 스피커를 가졌기에 모욕적 표현을 썼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 의원 역시 일반 국민이 아니라 의정활동에 대한 품평에 항상 노출된 정치인인데 똘마니 정도의 표현에 언짢아 소까지 제기한 것은 좀 과한 조치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진영 대결이 너무 심해 뭔 일이 터지기만 하면 고소고발을 일삼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이제는 정치인들부터 법정으로 달려가니 씁쓸할 따름이다. 김 의원의 소 제기가 진정 ‘입막음’용이 아니라면 앞으로 똘마니라는 표현도 모욕으로 느낄 만큼 정치인들의 말도 품격을 되찾아야 할 테다. 대정부질문 때 터져나오는 야유성 발언과 상임위 회의 때 여야가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 똘마니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추잡한 말들이 넘치지 않은가. 여당부터 모범을 보이길 바란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