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이 아름다운 시어로 보편적 존재 표현”

입력 2020-10-09 04:02
스웨덴 한림원은 8일 미국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을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사진은 지난 2014년 11월 19일 뉴욕에서 열린 전미도서상을 수상하기 위해 참석한 글릭의 모습. AFP연합뉴스

미국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77)이 2020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글릭은 지난해 발표된 올가 토카르추크(폴란드·2018년 수상자)에 이어 노벨문학상 역사에서 16번째 여성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스웨덴 한림원은 8일(현지시간) 글릭을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수상자는 총상금 1000만 크로나(약 13억원)과 함께 메달 및 증서를 받는다. 글릭은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1993년) 이후 27년 만에 수상한 미국 여성이기도 하다. 노벨상 공식 트위터 계정은 글릭의 수상이 발표되기 한 시간여 전 모리슨의 사진과 그녀에 대한 내용을 올리기도 했다. 그간 노벨문학상이 유럽과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전과 다른 흐름이다.

글릭은 국내에서 아직 번역된 작품이 없지만 미국 내에선 퓰리처상을 비롯해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유명 시인이다. 그는 1943년 뉴욕에서 태어나 롱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10대 시절 거식증을 앓고 불안한 심리상태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7년여간 상담 치료도 받기도 했다. 시인이면서 예일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글릭은 1968년 첫 시집 ‘맏이(Firstborn)’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5년 발표한 ‘습지의 집(The House on Marshland)’은 비평가들 사이에서 획기적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2년 나온 시집 ‘야생 붓꽃(The Wild Iris)’으로는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2014년에는 ‘충실하고 고결한 밤(Faithful and Virtuous Night)’으로 전미도서상도 수상했다.

한림원은 글릭에 대해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갖춘 그녀의 명징한 시적 목소리는 개인의 존재를 보편적으로 만든다”라고 밝혔다. 또 “인류의 보편적 실재를 추구하며, 신화와 고전 주제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한림원은 글릭의 작품 중 ‘아베르노(Averno)’를 꼽으며 해당 작품이 하데스에게 붙잡혀 지하로 끌려가는 페르세포네의 신화를 해석한 거장다운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충실하고 고결한 밤’에 대해선 “또 다른 굉장한 위업”이라고 칭찬했다.

글릭에 대한 논문을 쓴 양균원 대진대 교수는 “글릭은 서정성과 시대의식을 결합한 시인이다”며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모두의 이야기를 하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결합을 추구하는 시인”이라고 말했다.

노벨문학상은 최근 몇 년 사이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2016년 미국 가수 밥 딜런이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평론가들 사이에서 ‘문학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등에 대한 뒷말을 남겼다. 2017년 11월에는 여성 18명이 한림원 종신위원인 시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의 남편이자 스웨덴 문화계 거물인 사진작가 장 클로드 아르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프로스텐손이 1996년 이후 7차례에 걸쳐 노벨상 수상자 명단을 사전 유출했다는 의혹까지 함께 제기됐다. 그 여파로 2018년에는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았다.

2018년과 2019년 수상자가 동시 발표된 지난해에는 2019년 수상자 페터 한트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한트케가 ‘발칸의 도살자’로 불렸던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대통령 밀로셰비치를 옹호한 전력이 문제가 됐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