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황금새벽당의 자멸… 3당서 범죄조직으로

입력 2020-10-09 00:09
7일(현지시간) 극우정당 황금새벽당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 그리스 아테네 항소법원 밖에 수만명의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리스 의회 제3당 위치까지 올랐던 극우 정당 ‘황금새벽당’이 결국 소멸된다. 이 당을 이끄는 전직 의원 18명 전원이 범죄단체 운영·가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정당이라는 외피를 쓰고 테러, 살인 등을 저질러왔다.

그리스 아테네 항소법원은 7일(현지시간) 황금새벽당 지도부를 구성하는 전직 의원 18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마리아 레페니오티 판사는 법정에서 “니콜라오스 미칼롤리아코스 총재를 비롯한 7명이 실제 범죄단체를 운영했고 나머지는 범죄단체에 가담한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반파시스트 래퍼 파블로스 피사스를 살해한 혐의로 황금새벽당 당원인 기오르고스 루파키아스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이 살해 음모에 가담한 15명도 함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 2015년 4월 심리가 시작된 이래 5년여 만에 나온 이번 판결은 혐의에 대한 유무죄 여부만 따진 것으로 구체적 형량은 향후 재판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현지에서는 미칼롤리아코스 총재 등에게 최대 10년의 징역형이 내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경비가 삼엄한 아테네 법원 근처에 모인 수만명의 시민은 유죄 판결이 나오자 환호했다. 반인종주의 운동가 페트로스 콘스탄티누는 “멋진 날이다. 오늘 이곳의 분위기는 과거 그리스가 나치로부터 해방되던 날 우리가 봤던 축하 행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황금새벽당은 군인 출신인 미칼롤리아코스가 1980년 극우 잡지 ‘황금새벽’을 창간한 것을 시발점으로 삼는다. 노골적인 신나치주의를 기치로 내세우며 지지를 확장했고, 1993년에는 정당 등록을 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군소 정당에 불과했던 황금새벽당은 2010년대 들어 유럽의 경제위기와 난민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2012년 금융위기로 고강도 긴축 재정이 시행되던 와중에 치러진 총선에서는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노골적인 외국인 혐오를 부추겨 정치적 돌풍을 일으켰다. TV토론회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추태를 보이고도 약 7%의 전국 득표율을 획득했다. 의회 300석 중 18석을 차지하며 단숨에 제3정당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테러집단에 버금가는 황금새벽당의 폭력성은 결국 당을 파멸시켰다. 이번 재판을 촉발한 2013년 피사스 살해 사건은 한때 10%에 달했던 황금새벽당의 지지율을 3% 이하로 떨어뜨렸다. 이민자, 노조 활동가, 좌파 정치인, 성소수자 등에 대한 폭력행위로 수십명의 황금새벽당 관계자들이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다. 현지에서는 이번 판결로 40년 된 황금새벽당의 명맥이 완전히 끊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지난해 총선에서도 전국 득표율 3%의 문턱을 넘지 못해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