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이 치솟고 전세 매물이 씨가 말라도 곧 안정될 것이라며 손 놓고 있던 정부가 이제야 현실을 인정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국회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전세가격이 많이 올라와 있는 상황이고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 같다”며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최근의 전세난은 지난 7월 말 시행된 개정 주택임대차법의 영향이 크다. 이에 관한 정부의 인식은 한 달 사이에 급격히 바뀌었다. 지난달 11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몇 개월 있으면 (전셋값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했지만, 8일 홍 부총리는 “(임대차법 시행 후) 2개월 정도면 어느 정도 효과가 나지 않을까 했는데 안정화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금세 진정될 것으로 낙관하던 사이에 가격은 계속 오르고 매물은 사라졌다. 안일한 판단으로 국민의 주거 불안을 방치한 것이다.
사실 전세난은 훤히 예상됐던 일이다. 정부는 임차인의 권리를 강화하고 급격한 임대료 상승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임대차법 시행에 나섰지만 시장에선 부작용을 우려했다. 부작용은 고스란히 현실화됐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기존 전셋집에 2년 더 눌러앉는 수요가 늘면서 전세 매물이 부족해졌고, 집주인들은 보증금이 최장 4년간 묶이고 갱신 시 인상률도 5%로 제한되는 것을 감안해 보증금을 크게 올린 것이다. 워낙 물건이 없다 보니 과도하게 올린 가격을 마음 급한 임차인이 그대로 받아줘 실거래가로 굳어진다. 서울 강남에선 20억원이 넘는 초고가 전세도 나오고 있다.
전세난의 실상은 홍 부총리가 몸소 경험하는 중이다. 국민일보 8일자 보도대로 홍 부총리는 보증금이 2억원 이상 오르고 매물도 부족해진 가운데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초부터 서울 마포구 아파트에 보증금 6억3000만원에 전세로 살고 있는데 집주인이 실거주를 하겠다고 해서 내년 초에 집을 빼줘야 한다. 하지만 같은 단지 내 전세가는 현재 8억3000만~9억원으로 뛰었고 매물은 3개뿐이라고 한다. 경제정책의 수장이 정책의 부작용을 직접 겪게 된 기막힌 상황이다. 그가 직접 체감했기 때문에 상황 인식이 달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들어갈 집이 부족하면 임대료는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대로라면 전세난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세가 상승은 매매가를 밀어 올릴 우려도 있다. 정부는 단기적 공급 확대를 비롯한 전세 시장 안정화 대책을 시급히 내놔야 한다.
[사설] 홍 부총리도 못 피한 전세난… 대책 시급하다
입력 2020-10-09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