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신웅 (5) 공부의 길 열어 준 우리 부부에 감사의 눈물 글썽

입력 2020-10-12 03:06
김신웅 장로가 1998년 청송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교정선교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이라 생각한 나는 계속 아내를 설득했다. 가정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 유치원생인 둘째 딸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교회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의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악인을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엄마도 아빠 하시는 일 도와주세요.” 아내는 딸이 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성령께서 아이의 입술을 통해 자신에게 경고하신 줄 알고 순종하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 감호소를 방문했다. 교무과장이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현황을 설명 듣고 한 달분(45명)의 교육비를 냈다. 자매결연을 한 5명의 명단도 받았다. 새벽 기도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 일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했다.

일주일 후 아내와 함께 자매결연자들을 만나러 갔다. 교무과 직원의 안내로 들어서는 5명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폭력 전과 10범의 박영수(가명)는 세상 불만을 한몸에 지닌 듯 날카로운 시선을 던져왔고, 우람한 체구지만 건드리면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전과 7범의 전민수(가명), 절도 10범 정일홍(가명), 기술 절도 8범 김희범(가명), 같은 죄명의 8범 김용태(가명)가 있었다. 나는 이들을 보면서 예수님이 왜 갇힌 자를 돌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는지 그 뜻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학력을 물었더니 박영수만 고등학교 중퇴이고 대부분 무학력자들이었다. 내게 보내오는 편지가 대필이란 직감이 스쳐 갔다. 나는 이들에게 자신이 직접 쓰지 않은 편지에 대해서는 답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교무계장에게 이들 전원을 교육생에 편입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초등부 교육에 들어간 이들은 처음엔 글자인지 그림인지 분간하기 힘든 편지를 보내왔다. 날이 갈수록 밑받침이 거의 없던 그들의 편지가 조금씩 격식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은 초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한글과 숫자를 깨우칠 수 있도록 공부의 길을 열어준 우리 부부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전민수 형제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기 부모님에게 이 소식을 전했더니 청송감호소까지 가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아비를 속이려 한다는 꾸지람이 가득 담긴 답장을 받았다며 보여줬다.

그는 출소하기 전 이렇게 말했다. “집사님, 이 합격증을 품에 넣고 다니면서 위기에 처할 때마다 꺼내 보면서 내 인생의 길잡이로 삼겠습니다.” 그 뒤로 그가 광주에서 작은 건설업체의 감독이 돼 열심히 살고 있다는 반가운 회신을 받았다.

자매결연자 5명 중 2명이 다시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나는 이 형제들을 통해 그들이 범죄를 하게 되는 데에는 무지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향한 사랑과 관심이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