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주요 대학병원장들이 머리를 숙였다. 국립대학병원협회장 김연수 서울대병원장, 사립대학교의료원협의회장 김영모 인하대의료원장, 김영훈 고려대의료원장, 윤동섭 연세대의료원장은 8일 “코로나19로 인해 매우 힘든 시기에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시험 문제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국민에게 형용하기 힘든 실질적, 정신적 고통을 주고 이제 와서 사과하는 이들의 진정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사과하려거든 진료 거부를 풀 때 해야 했다. 애초 명분 없는 진료 거부에 들어간 자체가 잘못이다.
이들이 머리를 숙인 이유는 사과에 있지 않다. 진심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방침에 반발해 의사 국가시험을 거부한 의대생에게 재응시 기회를 주라는 데 있다. 후배를 아끼고 염려하는 선배들의 정성이 참으로 눈물겹다. 의아한 것은 정작 당사자인 의대생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임승차할 생각이 아니라면 선배 뒤에 숨을 게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본인들의 입장을 먼저 밝히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두 차례 시험 일정을 연기해준 정부 배려에도 끝끝내 국시를 거부했던 청춘의 호기는 다 어디 갔나.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집단행동에 나선 의대생과 의료진에게선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주요 대학 병원장들의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은 그럴 각오 없이 의대생이 국시를 포기했다는 말로 귀결된다. 그 사태를 겪고도 의료계 기득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선언인 셈이다. 이들은 의대생에게 국시 재응시 기회를 주지 않을 경우 상상하기조차 싫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생긴다고 공포 분위기를 조장한다. 의료계에 싸늘한 국민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체 불가능한 직역의 특수성을 악용해 특혜를 베풀라는 노골적인 압력이다. 다른 직역에선 상상할 수 없는 국가시험 거부를 의대생은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도 특혜는 없다는 원칙을 이번에 확실히 세워야 한다. 예외를 허용하면 다음에도 국시 재응시 기회를 달라고 몽니 부릴 게 뻔하다.
[사설] 의대생 어디 가고 병원장이 국시 재응시 반협박하나
입력 2020-10-09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