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서먹서먹한 대통령

입력 2020-10-09 04:01

국민이 화났을 때 늘 먼저 마이크 앞에 서서 이해를 구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반면 문 대통령은 국민한테 직접 설명할 사안도 내부회의 발언으로 대체하는 경우 많아
국민과의 직접 소통 노력이 곧 그 대통령에 대한 기억 남은 임기 달라진 모습 보이길

“안 좋은 일, 국민이 언짢아하는 일, 국민이 오해하고 있는 일, 그런 일들이 있으면 결코 다른 사람 대신 시키지 않고, 당신이 직접 언론 앞에 나가서 심하다 싶을 만큼 다 이해를 구하거나 설명을 하거나 반박을 했죠. 그때는 비판도 많이 받았고, 대통령답지 못하다, 심지어 경망스럽다는 비난까지 받았지만, 우리 역사상 우리가 가졌던 대통령 가운데 가장 국민들에게 책임 있게 하려고 했던 대통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회고하는 다큐멘터리에서 한 얘기다. 양 전 원장의 말이 거의 100% 팩트라는 건 보수 진영이든 진보 진영이든 다 동의할 것이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그랬다. 국민이나 반대파에게 본심을 전달하고 싶거나, 본인이든 측근이든 잘못이 있어 해명 또는 사과해야 할 일이 있거나, 야당이나 언론에 의해 부당하게 공격받았다고 생각될 때 꼬박꼬박 마이크 앞에 직접 섰다. 재임 중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 등을 150회 정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측근들이 말려서 그 정도였지 안 말렸다면 더 잦았을 것이다.

그때는 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의견을 너무 많이 표출하고, 특히 국민한테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공개석상이나 생중계되는 자리에서 본인 생각을 자주 드러내는 게 못마땅하다는 보수 진영의 공격도 많았다. 보수 언론은 그런 노 전 대통령을 경망스럽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렇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노 전 대통령의 그랬던 모습이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이, 심지어 재임 당시에는 지지하지 않던 사람들까지 그를 더 인간적으로 느끼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퇴임 후 지지자든 아니든 봉하마을에 연일 관광객이 몰렸던 것도 재임 당시 대통령의 스스럼없고 진솔한 소통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양 전 원장이 ‘경망’이란 말까지 끄집어내며 당시를 회고한 것도 노 전 대통령이 그러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을 계승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너무나 대조적이지 않은가. 국민이나 언론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고 느껴질 정도다. 재임 이후 집권 4년차인 지금까지도 그렇다. 행사 연설이나 청와대 내부회의, 국무회의 발언 말고는 도통 대통령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 정도를 비교하자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문 대통령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못지않게 은둔형 리더처럼 보인다. 최근만 해도 대통령이 국민 앞에 직접 나서야 했을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북한군에 의해 우리 국민이 피살된 충격적인 일이 생겼으면 청와대 참모들과 하는 내부회의 발언이나 대변인을 통해 입장을 낼 게 아니라 직접 국민 앞에 섰어야 했다. 법무장관 가족을 둘러싼 공정 문제와 거짓말 논란이 한 달 넘도록 나라를 들쑤셨으면 역시 대통령이 국민한테 양해를 구하든, 별것 아니라고 반박하든 뭐라도 언급을 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은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몇 달째 대립하며 나라를 뒤흔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감사원장이 대통령이 임명하길 원하는 감사위원을 대놓고 거부하는데 정작 대통령이 아무 말 없이 가만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과거 신년 기자회견을 하는 걸 보면 대응도 능수능란하고 말에도 진정성이 느껴지는데 그런 능력을 가진 문 대통령이 정작 나라에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왜 국민 앞에 나서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과의 소통은 대통령이 남기는 중요한 업적 중 하나다. 어쩌면 제일 뚜렷이 기억되는 게 국민과의 소통 노력일지 모른다. 미국인들에게 ‘노변정담의 대통령’으로 각인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재임 중 수시로 라디오에 나와 국민들에게 현안을 설명했다. 화롯가에 이웃을 모아놓고 담소하듯 친근하게 소통해 노변정담으로 불렸다. 백악관 기자실을 예고 없이 자주 찾았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금껏 존경받는 것도 국민들과 격의 없는 소통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반 정도 남았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이나 야당, 언론한테 ‘대통령은 어디에 있느냐’라는 말을 듣는 쫓기는 대통령이 되지 말고, 그들 앞에 먼저 다가가 먼저 말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그러지 않을 경우 퇴임 후 일부 극성 지지층을 빼고 다수 국민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참 서먹서먹한 대통령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