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전세’ 대란 시작… 집주인이 220명 전세금 449억 ‘먹튀’

입력 2020-10-08 04:03

서울 양천구에 사는 임대인 A씨는 2017년부터 지난 8월 말까지 무려 220명에 달하는 세입자에게 449억41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A씨가 일으킨 ‘전세 사고’ 가운데 207건에 대한 전세보증금 423억8500만원을 대신 갚아줬다. 하지만 HUG는 지금까지 A씨에게 이 금액을 한 푼도 회수하지 못했다.

등록 임대사업자인 A씨는 제도와 법의 허점을 이용해 빌라 분양업자·중개업자와 짠 뒤 다세대주택을 집중적으로 매입하고 전세보증금을 부풀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잠적한 그가 보유한 임대 주택은 총 490채로 세입자들은 대부분 신혼부부이거나 갓 취업한 사회초년생인 것으로 전해졌다.

7일 국토교통부와 HUG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 6월까지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임대인 상위 30명이 저지른 보증사고 건수는 549건이었고 사고 금액만 1096억4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전세금 반환보증보험은 임대인이 임차 계약 기간 만료 후에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가입자에게 보증금을 대신 지급(대위변제)해준 뒤 구상권을 행사해 집주인에게 청구하는 상품이다. 하지만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끝내 변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HUG는 서울 관악구의 B씨가 돌려주지 못한 전세보증금 28건 63억5200만원, 충남 예산군 C씨의 전세금 12건 28억6000만원을 대신 갚아줬으나 역시 회수하지 못했다.

HUG는 전세금 미반환 상위 30위가 갚지 않은 전세금 549건 1096억4000만원 가운데 966억6400만원을 대신 내줬지만 이후 회수금은 117억3100만원(12.1%)에 그쳤다. 특히 반환보증 사고 상위 10명 중 6명은 A씨처럼 단 한 푼도 변제하지 않았다.

보증기관인 HUG와 SGI서울보증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대위변제 미회수 금액은 매년 증가세로, 2016년부터 올해 9월까지 총 7654억원에 이르렀다.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주택 유형별 전세금 대위변제 회수율은 아파트 74%, 단독주택 56%, 다가구주택 46%, 연립주택 43%, 오피스텔 34%, 다세대주택 22%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아 갭투자가 용이하고, 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주거 상품일수록 회수율도 낮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전셋값이 급등하고 집값이 조정 국면에 들어서는 시기에 이른바 깡통 전세가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갭투자 후폭풍이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