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종적을 감췄던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대사 대리는 스위스와 프랑스, 동유럽을 전전하던 중 우리 정부에 수차례 한국행 의사를 자발적으로 밝혔고, 지난해 7월 자진해서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 전 대사 대리의 국내 입국을 공식 확인했다. 그는 “조 전 대사대리가 지난해 7월 한국에 자진해서 왔다”며 “수차례 한국행 의사를 자발적으로 밝혔고 우리가 그 의사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의 자발적인 한국행 의사를 정부가 확인해 망명을 도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 전 대사 대리가 처음부터 한국행을 원한 건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 측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지만 불안을 느낀 조 전 대사 대리 부부는 스위스로 도피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프랑스로의 망명을 가장 원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통한 미국 망명 역시 불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정 기간 이상 정보원으로 협조해야 특별 절차로 미국행이 가능한데 조 전 대사 대리가 이 기간을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내지 북·미 관계가 개선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CIA의 보호 아래 조 전 대사 대리 부부는 북·미 회담이 있던 지난해 2월 북한대사관이 없는 동유럽 A국 주재 한국 대사관을 찾았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은 딸을 북한대사관에 두고 나온 것에 괴로워하던 부인 이씨가 이탈리아 북한대사관에 전화를 거는 바람에 위치가 노출됐다. 북한은 A국 주재 중국대사관으로 갈 것을 종용한 뒤 이씨를 빼돌리려 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A국에 조 전 대사 대리 부부의 송환을 요구하는 북한의 방해로 이들의 한국 망명이 늦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에 남아있던 미성년 딸은 북한으로 송환된 것으로 지난해 2월 이탈리아 외교부가 확인했다.
전 의원은 “북한에 있는 가족 걱정 때문에 본인(조 전 대사 대리)이 한국에 온 게 알려지는 것을 당연히 원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조 전 대사대리는 안전가옥(안가) 생활을 하며 정부 산하 대북 연구기관에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또한 딸의 신변과 연관 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자신이 수면 위로 드러날 경우 딸에게 가해질 불이익을 염두에 둔 것이란 설명이다.
조 전 대사 대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치품 조달 역할을 했다. 일각에선 대북 제재로 물품 조달에 차질을 빚게 되자 심리적 압박을 느껴 탈북을 결심했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외교관은 외화벌이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이른바 ‘충성자금’을 바쳐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대북 제재로 인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 할당된 금액을 바치지 않으면 문책 및 소환을 당한다.
자금을 관리하다 보면 밀거래 등 부패 문제에 연루되기도 하는데 조 전 대사 대리도 잠적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 부패 문제가 거론됐다. 이 경우에도 북으로 돌아가 문책을 당한다.
조 전 대사 대리의 한국행이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 이후 20여년 만의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망명이란 점에서 김 위원장에게 상당한 타격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이 사안과 관련해 우리 정부와 접촉했는지 여부에 대해 전 의원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김영선 박재현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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