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 태아 호흡 운동한다’ 낙태 입법안, 진통 예고

입력 2020-10-08 00:15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오른쪽)과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나란히 서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이날 입법예고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사실상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24주라는 기간은 태아의 생명권,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국 입법례 등을 고려한 논의의 결과물이다. 다만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사실상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법안이라는 목소리가 엇갈려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7일 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임신 14주까지는 여성의 결정 아래 낙태가 전면 허용된다. 24주까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을 경우 모자보건법에 따른 상담 및 24시간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 상담을 거치면 사실상 여성 결정 아래 낙태가 가능해진다.

정부는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여성계와 종교계 등의 목소리를 반영해 입법안을 마련했다. 우선 여성계가 요구해온 낙태죄 전면 폐지는 국가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라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임신 14주라는 시기는 헌재 결정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헌재에서 단순위헌 결정을 낸 재판관 3명은 14주까지는 여성에게 사유를 묻지 않고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14주는 여성 신체의 안전에 따른 기준이다. 14주가 지나면 수술 과정에서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시 헌재는 태아의 생명권도 중요하지만 낙태를 금지함으로써 생기는 여성의 실질적인 고통이 더 무겁다고 봤다. 또 늦으면 8주 정도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데 적어도 6주 정도 생각할 기간은 필요하다고 봤다.

독일 덴마크 이탈리아 등의 경우 12주까지 낙태를 허용한다. 다만 마지막 생리 시작일부터 임신 주수를 계산하는 한국과 달리 외국은 수정 혹은 착상일부터 계산하는 경우가 많아 기간 제한은 비슷하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14주 태아는 일반적으로 크기 8㎝, 몸무게 40g 정도다. 팔과 다리에 관절이 생기고 호흡 운동을 하는 시기다. 종교계 등에서는 이 시기의 낙태도 허용해선 안 된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또 15~24주 기간에는 상담과 숙려기간이라는 제한을 뒀다. 22~24주는 태아가 모체에서 분리돼 생존할 가능성 및 수술의 위험성 등을 고려한 기간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태아의 독자 생존 가능 시기를 22주라고 본다. 헌재도 22주를 제시했는데 정부에서는 24주로 입법안을 마련했다. 현행 모자보건법에서 부모의 유전학적 질병 등 특정 사유의 경우 24주 내 낙태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 감안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행법이 24주인데 22주로 더 당기면 헌재 결정 취지에 반한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는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재 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여성의 사회활동이나 소득 등에 대한 지원 정책이 선행됐어야 했다”며 “향후 상담기관의 상담 절차 등이 형식적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16세 이상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 없이 상담기관의 확인서가 있으면 낙태가 가능해진다. 또 낙태에 남성의 동의도 필요없어진다. 먹는 낙태약도 처음으로 합법화된다. 미성년자가 불법 낙태를 받는 것을 방지하고 여성의 의사결정을 더 존중한다는 취지다. 다만 낙태 허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나성원 구승은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