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대사대리가 지난해 7월 극비리에 국내로 들어와 정착한 사실이 공개돼 파장이 예상된다.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 망명 정보는 그의 딸이 북한에 머물고 있어 신변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자칫 남북 관계에도 악재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시기적으로도 최근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사살된 우리 국민의 시신을 남과 북이 수색하고 있는 때인 데다 오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앞둔 시점이어서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때 북측 외교관의 정치적 망명이라는 고급 기밀이 흘러나와 때아닌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극소수만 알고 있어야 할 망명 기밀이 어떻게 지금 같은 민감한 시기에 공개됐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조 전 대사대리 망명 사실은 6일 한 방송 매체가 보도했고, 이후 국회 정보위원장 등이 확인을 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공개에 따른 파장을 예상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일부러 유출돼 보도된 것이라면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주의로 기밀이 알려지거나 조 전 대사대리의 동선을 노출시켰더라도 관리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특히 최근 북한군에 의한 우리 국민의 피살 사건과 관련해서도 여야 각각에 의해 군의 민감한 대북 감청 정보가 실시간 중계되듯 흘러나왔는데, 이 정도면 현 정부 기밀 관리에 심각한 구멍이 뚫린 게 아닌가 싶다. 정부는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차제에 국가기밀 관리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번 일로 남북 관계가 훼손돼선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우리 국민 시신 수색에 차질을 빚거나 향후 남북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게 해서도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여야 정치권이 이 문제를 정쟁화하면서 요란을 떨 게 아니라 ‘로 키’로 대응하는 게 옳다. 조 전 대사대리도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에 본인의 한국 망명이 공개되지 않기를 원했다고 하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라도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 북측도 이번 일을 빌미 삼아 관계 개선이라는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말길 바란다.
[사설] 軍 감청정보에 北외교관 망명 기밀까지 줄줄 새다니
입력 2020-10-08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