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 성향의 이란 팔레비 왕조 붕괴 직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신정일치의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수립했다. 망명을 타진하던 팔레비를 미국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미국과 이란은 급격히 적대 관계로 변했다. 팔레비 신병 인도를 요구하던 시위대는 1979년 11월 테헤란 미국대사관에 난입해 외교관 70여명을 억류했다.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는 각종 경제제재를 가하다 이듬해 단교 조치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애초 캐나다 대사관저로 피신했던 6명은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캐나다 정부의 영화 제작을 위장한 구출 작전을 통해 가까스로 이란 탈출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지만 억류 외교관 수십명 구출을 위한 특수부대의 ‘독수리발톱 작전’도 시도됐다. 이들은 결국 억류 400여일 만인 1981년 전원 석방됐다.
2009년 3월 미국 기자 유나 리, 로라 링은 북·중 접경지역 취재 중 불법 월경 혐의로 북한군에 체포됐다. 이들은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면 대가로 북한이 미 정부에 요구한 것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특사 자격 방북, 대북 적대행위에 대한 미국의 인정 그리고 공식 사과였다. 그해 8월 클린턴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김정일에게 사과했고, 두 기자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다. 북한을 정상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미국 정부가 전직 대통령을 북한에 보내 공식 사과하는 것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북한 요구를 사실상 모두 수용했다. 정부가 국민 생명과 안전을 무엇보다 앞서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과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다만 김 위원장과의 3시간 면담, 기념촬영 때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켰다.
2020년 9월 우리 정부는 어땠나. 연평도 해역에서 발생한 북한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 사건에 대한 대응은 정부의 존재 이유를 국민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다. 남북 채널은 엄연히 가동 중이었는데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도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이후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청와대는 이 사건이 9·19 남북 군사합의 정신을 훼손한 것은 맞지만 정작 합의의 세부사항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정부는 당초 엄중 대응, 책임자 처벌 촉구 등을 공언했지만 “대단히 미안하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한마디에 태도가 돌변했다. 주무 부처 장관은 “신속하고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집권여당의 누구도 유족을 만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경위와 상관없이 유가족들의 상심과 비탄에 대해 깊은 애도와 위로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한 경고,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촉구는 전혀 없었다. 이런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북한에 공동조사를 계속 촉구하지도,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지도, 서해경계선 침범을 경고한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대한 반박도 없다. 대북 저자세라는 비판 여론이 비등한 데도 별다른 말이 없다.
북한의 만행은 반인륜적 행위다. 또 승리한 함장이 해양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적군의 구조를 의무화한 국제법도 위반했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 대통령의 헌법상 책무이기도 하다. 북한 만행에 대한 책임 추궁을 외면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선 안 된다.
북한과의 협력은 필요하다. 물론 종전선언과 대북 평화구상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국민의 생명보다 앞서서는 안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한민국은 이제 단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은 말보다 행동을 원한다.
남혁상 정치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