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낙태 사실상 전면 허용, 생명경시 확산 우려된다

입력 2020-10-08 04:01
정부가 7일 입법예고한 낙태 허용 규정 신설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라는 헌법재판소의 주문을 따른 것이지만 유감이다.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의 중요성을 공감하면서도 낙태에 대한 합법 인식이 일반화되면서 생명경시 현상이 확산될까 우려스럽다. 개신교 등 종교계가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이번에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개정하면서 임신 14주까지는 임신한 여성 본인이 자유 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임신 15~24주 이내는 사유가 있는 경우 모자보건법에 따라 낙태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 관련 기관의 낙태 실태 조사에 따르면 평균 낙태 시기는 95% 이상이 12주 이하로 드러난다. 14주 규정 자체가 별로 실효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다. 더욱이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추가해 24주 이내로 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한 것은 사실상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 지정 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24시간의 숙려기간만 거치면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입증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는데, 기준이 모호해 남용될 여지가 많다. 또 사리분별이 어려운 미성년자에게 불가피한 경우 보호자 동의 없이 상담만 받고 낙태 시술이 가능하도록 한 부분도 논란이 되고 있다. 자연유산 유도 약물 허용도 자칫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여성계 등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 개정안이 퇴행적 행태라고 비판하지만, 기본적으로 태아의 생명권은 그 어떤 가치보다 크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 같지만 낙태가 임부의 의지와 관계없이 강요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등 남용되면 오히려 여성 인권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

정부가 헌재 결정 이후 1년여 동안 이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다 별다른 공론화 과정도 없이 불쑥 개정안을 내놓은 것도 문제다. 정부는 그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해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하나 여론 형성 과정이 충분했는지 의문이다. 헌재는 올해 연말까지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시일이 촉박하지만, 그렇다고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최소한의 법적 제어 장치를 마련해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냥 낙태해도 된다는 무분별한 인식이 확산되지 않고 태아 생명권의 소중함을 공유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먼저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낙태하지 않고 출산하는 임부와 태아에 대한 국가적 지원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