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틈타 세종시 연동면의 황우산 등산로를 걸을 때 일이다. 산자락 한편에 양봉을 하는 분들 모습이 보였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발걸음이 분주해졌다고 한다. 슬슬 월동준비를 해야 하다 보니 꿀벌의 먹이 상황을 살펴보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거다. 비축한 꿀로 겨울을 버텨내야 할 꿀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꿀벌의 생태계를 유심히 살펴보면 인간 군상과 참 닮았다. 분류 자체는 단순하다. 일반적으로 여왕벌과 수벌, 일벌로 나뉜다. 우두머리인 여왕벌의 존재가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벌이다. 일벌이 없는 벌집은 성립될 수 없다. 꿀벌의 세계에서는 일벌이 곧 국가를 유지하는 국민이다.
일벌이 지닌 다채로운 능력이 영토인 벌집을 유지시킨다. 벌집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도맡는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일벌은 집안일을 담당한다. 여왕벌에게 먹이를 주고 새로 태어난 알을 돌본다. 좀 더 크면 집을 유지하는 역할이 주어진다. 몸속에서 끄집어내는 밀랍으로 벌집을 보수하고 방을 늘린다. 냉난방도 전담한다. 여름이면 날갯짓으로 온도를 내리고 겨울에는 가슴 근육을 진동시켜 열을 내 집안을 따듯하게 만든다.
주식인 꿀을 채집하는 활동은 부화 후 최소 20일 이상 지난 ‘성인’들이 맡는다. 외부에 나가는 일만큼은 어린 개체들에게 맡기지 않는 것이다. 국립생물자원관 김선재 박사는 “가장 위험한 일을 성체가 맡는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부모 보살핌을 받다가 성인이 된 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는 우리네 모습과 흡사하다.
일벌의 중요성은 사례로도 증명된다. 미국 유럽 등에서 발생한 ‘벌집군 붕괴 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이 대표적이다. CCD는 꿀을 채집하러 떠난 일벌이 벌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여왕벌과 유충이 폐사하는 현상을 말한다. 여왕벌이 없으니 더이상 벌집이 유지될 수 없다. 일벌의 감소가 국가의 패망과 직결된다.
사람이 구성원인 국가도 꿀벌의 생태계와 비슷하다.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일은 소수의 위정자에게 맡겨진다. 하지만 실제 국가를 살찌우고 유지하는 일은 국민의 몫이다. 출산과 육아, 교육을 거쳐 직업 전선에 나선 뒤 사회 유지 기능을 담당한다. 각 분야에서 개개인의 크고 작은 힘이 유기적으로 모여 엄청난 결과를 만든다. 코로나19에 대응해 온 의료진과 한국 국민의 역량은 놀라운 수준이다. ‘일탈’이라 부를 수 있는 조금의 엇나감이 있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회복하는 자정 작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회복하지 못할 정도의 걱정거리는 아니다.
다만 우려스러운 부분이 보인다. 언젠가부터 국민이 둘로 갈라졌다. 서로를 헐뜯는다. 전선이 참 명확하다. 대통령을 기준점으로 삼아 옹호하면 우리 편이고 힐난하면 적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그랬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도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부동산 문제 역시 집주인과 세입자가 임대차 3법을 기점으로 적대관계가 됐다.
국가에는 다양한 구성원이 있는 만큼 논란이 발생하고 다툼이 있을 수 있다. 여왕벌 지위가 절대적인 꿀벌의 세계에서도 일벌들끼리 싸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처럼 극단적 장기적으로 양극화하는 상황은 위태롭다. 둘로 갈라진 국민 중 일부는 국가를 등질 수 있다. 일벌이 돌아오지 않게 된 벌집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만물의 영장이라 지칭하는 인간에게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CCD 현상의 경우 2008년 대유행 이후 아직까지도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의사가 통하지 않으니 내로라하는 연구진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반면 우리가 둘로 갈라진 원인은 찾아낼 수 있다. 서로의 얘기를 들으면 된다.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면 답도 나온다.
미국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도덕적 사고란 혼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노력해 얻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대화 상대로 친구와 이웃, 시민을 호명했다. 이 상대는 나와 생각이 같은, 우리 진영을 옹호하는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도덕성을 앞세워 출범한 뒤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부의 사고는 도덕적이라고 평가하기가 어렵다. 꿀벌처럼 겨울을 잘 이겨내기 위해 모두를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