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항암 논란 구충제 파동이 남긴 것

입력 2020-10-08 04:06

폐암 4기로 투병 중인 개그맨 김철민씨가 항암 치료를 위해 그간 복용해 온 개 구충제를 모두 끊었다고 얼마 전 고백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표적 항암제와 함께 구충제를 먹어 온 그가 1년 만에 사실상 치료 실패를 인정했다.

김씨는 한동안 국내 암 환자들 사이에 광풍처럼 몰아쳤던 구충제 파동에 일조한 측면이 있다. 공인인 그가 SNS를 통해 구충제 복용 과정과 몸의 변화를 세세히 알려 항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대중에게 비쳤기 때문이다. 김씨의 쾌유와 함께 일말의 희망을 기대했던 말기 암환자와 가족들의 허탈감이 컸을 법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픈 암 환자들에게 구충제는 결국 ‘신기루’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인터넷 암 환자 커뮤니티 등에는 구충제를 찾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벼랑 끝 말기 암환자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이 시점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그동안 의학계와 보건 당국은 동물용이든 사람용이든 구충제의 인체 내 항암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복용 자제를 권고해 왔다. 구충제의 경우 장 속 기생충 박멸을 타깃으로 한 것이어서 체내 흡수율이 20%에도 못 미친다. 전신에 퍼진 암에 효과가 나타나려면 몸속에 흡수가 잘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더구나 개 구충제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동물이나 세포실험 수준의 논문 6, 7편뿐이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전무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문제는 국내 의료 현실에서 암 환자가 이런 정보를 접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말기에 가까운 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더 이상 해 줄 게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고통과 불편은 암 환자와 가족들이 오롯이 떠안아야 한다.

여기에는 의사와 환자 간 소통 부재, 중증의 말기 암환자들을 위한 인프라 부족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3분 진료에 많게는 하루 100명 가까운 암 환자들을 보는 의사에게서 상세한 대처법을 듣기란 매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유튜브 등 SNS에서 암 치료 효과를 봤다는 일부 환자들의 경험담을 접하면 혹할 수밖에 없다.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 옳고 그른 정보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다.

몇 개월 전 국내 지상파 방송이 현지 취재를 통해 보여준 영국과 한국 암 환자들의 치료 현실은 비교된다. 영국에선 의사가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간 모든 처방과 부작용, 몸 상태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준다. 질문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고, 의사는 “잘 모른다”는 말 대신 모든 질문에 답변해 준다.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암 연구소’라는 자선단체는 기금을 모아 항암 연구를 지원하거나 암 환자들에게 더 나은 치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도 이처럼 말기 암환자와 가족을 배려한 의료 인프라가 하루빨리 확충돼야 한다. 건강과 의학 정보를 다루는 유튜브 등 SNS에 대한 의학계 차원의 여과 장치나 가이드라인 마련도 필요해 보인다.

고가의 항암 신약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됐으나 건강보험 적용이 늦어져 경제적 이유로 약을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거나 빚더미에 오르는 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오죽하면 개 구충제를 먹겠느냐”고 외친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항암 신약 허가 후 보험급여까지 걸리는 시간은 823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519일)을 훌쩍 넘는다. 항암 신약의 신속한 급여화와 함께 별도의 암관리기금 마련을 통해 사각지대에 놓인 암 환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암 환자들이 더 이상 신기루 같은 구충제에 눈 돌리지 않도록 사회안전망 마련이 시급하다.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