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의학 칼럼] “훗날 돼야 하는 이름으로 부르라”

입력 2020-10-09 17:21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창세기 17장 5절의 말씀이다.

이 말씀으로 ‘그 사람이 될 수 있고, 그 사람이 훗날 돼야 하는 이름으로 부르라’는 내용을 생각해 보자. 괴테가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만 취급하면 발전이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대할 때 장차 될 수 있고, 돼야 하는 존재로 대접하면 결국 성취한다.”

상대의 좋은 가치를 읽어내 그렇게 대우하면 그 사람은 자기가 대접받는 모양대로 된다는 의미다.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가 있다.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다. 열심히 일하던 분들도 은퇴한 뒤 우울해진다. 사람은 존재감을 느껴야 의욕이 생긴다. 아이들이 보채는 것도 자기를 봐달라고 그러는 것이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회사와 가정에서 죽도록 일하는 이유가 돈 때문만은 아니다. 인정받기 위해서다.

‘메리케이’라는 화장품 브랜드가 있다. 회장의 이름을 딴 브랜드인데 그 회장이 말하는 성공의 비결이 이렇다. “모든 사람의 목에는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주세요’라는 푯말이 걸려 있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준다면 삶뿐 아니라 사업에서도 성공할 것이다.”

어느 수도원이 있었다. 하루는 수도원장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수도원에 활기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찾는 사람도 줄었고 경건의 모습도 사라졌다. 고민 끝에 위대한 스승을 찾아가 물었다. “우리 수도원이 이렇게 망가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 때문입니까.” 위대한 스승이 이렇게 말했다. “무지의 죄 때문이다. 너희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수도원에 변장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걸 모르는 무지의 죄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수도원장은 돌아왔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중 누가 변장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일까. 회계를 담당하는 수도사일까. 아니면 주방을 맡은 수도사일까. 아니야. 그들은 문제가 많은 사람인데…. 아니야. 어쩌면 그들일 수도 있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변장하신 건지도 몰라.” 수도사들도 수도원장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새 수도사들이 서로를 만날 때마다 “저분이 변장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됐다. 수도사들이 서로를 존중하게 된 것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듯 서로를 대했다. 수도원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경건한 분위기가 회복되고 다시 부흥하게 됐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시는 독특한 방식을 발견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사래를 통해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아브람은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사래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아 버렸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아브람은 믿음이 없는 인간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이 돼 버린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을 때 혼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고 불러 주시겠다고 하셨다.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도 씨름하다 야곱의 환도 뼈를 친 뒤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셨다.

아브람도 야곱도 불순종한 자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현존을 보지 않으시고 인정해 주셨다. 열방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로 부르셨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야곱의 가능성을 이름에 담아 부르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이라 부르지 않으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큰 기대를 갖고 계신다. 우리가 장차 돼야 하는 그 모습을 바라며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고 하나님이 기대하는 그 삶을 살아내는 하루 되길 바란다.

이창우 박사 (선한목자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