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가을이다. 찌뿌둥한 몸으로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쌀쌀한 출근길, 지하철 편의점 앞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워 오르는 원형 찜통과 그 안의 호빵들은 출근길 인파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호빵을 품고 돌아가는 투명한 찜통을 매몰차게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가을이 왔다는 것은 호빵의 계절이 돌아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8일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연간 호빵 매출의 60% 이상이 10~11월에 몰린다고 한다. 강추위가 찾아드는 12~1월보다 은근하게 추워지는 10~11월에 호빵 판매가 집중되면서 매년 호빵의 출시 시기도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다.
호빵에 대해 엄밀히 따져보자면 호빵은 빵의 한 종류가 아니라 SPC삼립의 제품명이다. 1971년 10월 ‘뜨거워서 입으로 호호 불어먹는 빵’이란 뜻을 담은 ‘호빵’이 처음 세상에 나왔다. 당시 삼립식품은 빵의 비수기였던 겨울철에 매출을 늘리기 위해 ‘호빵’을 출시했다. 찐빵을 언제든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든 호빵에 대한 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고 뜨거웠다.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 4개월 동안만 판매했는데 당시 삼립식품 연간 매출의 15%를 차지했을 정도다.
올해로 50살이 된 삼립호빵은 꾸준히 판매량을 늘려갔다. 지난해 호빵 매출은 1000억원에 이르렀고 연평균 10%의 매출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50년 동안 판매된 호빵의 개수는 약 60억개에 이른다. 연평균 1억2000만개씩 팔린 셈이다. 지금까지 팔린 호빵(지름 10㎝, 높이 5㎝ 기준)을 한 줄로 늘여 세우면 지구를 15바퀴 돌 수 있다. 호빵 60억개를 차곡차곡 쌓으면 에베레스트산을 1만7000번 왕복할 수 있는 높이가 된다. SPC삼립은 호빵 판매 기간을 출시 초기 4개월에서 현재 6개월까지로 늘렸다.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호빵이 판매되는 걸 감안하면 초당 7.6개씩 팔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가장 많이 팔리는 건 기본 호빵인 단팥·야채호빵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새로운 트렌드가 반영된 신제품 판매율이 증가하고 있다. SPC삼립은 피자·고구마·불닭·우유·버거·골든에그 등 매년 색다른 맛의 호빵을 내놓고 있다. 신제품 호빵의 매출 비중은 2016년까지 10%대였으나 지난해에는 20%를 넘어섰다.
올해 SPC삼립이 내놓은 신제품 호빵을 보면 식품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이천쌀 호빵’ ‘공주 밤호빵’ ‘연유단팥호빵’ ‘에그커스터드 호빵’ ‘쑥떡쑥떡 호빵’ 등을 새로 선보이는데 10~30대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맛이 담겨 있다.
호빵 맛의 변화만으로는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빵이 맛있어야 했다. SPC삼립은 SPC그룹의 특허 토종 유산균과 우리쌀에서 추출한 성분을 혼합해 개발한 ‘발효미(米)종’을 올해 출시하는 모든 호빵 제품에 적용했다. 2016년엔 토종효모를 적용해 호빵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었다.
호빵 유통 채널도 다양해지고 있다. SPC삼립 관계자는 “온라인 식품 주문이 빠른 속도로 늘면서 쿠팡, 마켓컬리, 배달의민족 등과 협업해 다양한 호빵을 판매하고 있다”며 “호빵이 처음 출시되던 무렵 언제 어디서든 따뜻한 호빵을 먹을 수 있도록 소매업체에 ‘찜기’를 제공했던 아이디어가 이제는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을 만나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