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당세… ‘정치 중심’ 여의도서 멀어지면 ‘위기’ 직면 신호

입력 2020-10-10 04:02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 의원, 당직자들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남중빌딩 중앙당사에서 현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16년 만에 당사를 매입해 여의도로 복귀했다. ‘영등포 시대’를 마감하고 ‘여의도 시대’를 다시 활짝 열면서 정권탈환 의지를 다졌다. 당사의 위치와 규모는 단순한 건물 그 이상의 의미로, 당세(黨勢)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당의 흥망성쇠에 따라 당사도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다. 국회가 자리 잡고 있는 정치의 중심지인 여의도에서 멀어지는 건 당의 위기 상황을 여실히 반영한다.

대출로 400억 당사 마련

국민의힘은 16년 만에 사들인 서울 여의도 당사로 옮겨 새 간판을 달았다. 새 당사를 400억원에 산 국민의힘은 전국 시·도당 건물을 담보로 대출받아 매입 자금을 마련했다.

당사 매입 작업을 진두지휘한 김선동 사무총장은 9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당사 마련에 대한 당원들의 열망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며 “집안이 어려울수록 형제들이 모여 살아야 집안이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당 조직이 한곳으로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입주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임대료를 내는 것보다 담보대출 이자가 더 부담이 없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당의 경영 효율화 차원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5일 여의도 남중빌딩에서 열린 새 중앙당사 현판식에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내년 4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이어지는 대선에서 정권을 되찾아온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남중빌딩을 새 당사로 선택한 것은 국회 인근 오피스빌딩 가운데 건물 전체를 매입할 수 있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회 인근 대부분 빌딩은 층별로 소유주가 달라 매입 절차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부가 정권탈환 각오를 다질 정도로 국민의힘에 새 당사 장만은 큰 의미를 갖는다. 당의 기반이 되는 번듯한 당사를 여의도에 마련한 만큼 다시 한번 대선 승리를 꿈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게 당내 분위기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당의 근간인 당사 마련이 2022년 대선 승리의 필수 조건임을 인식하고 있어 속도감 있게 추진됐다”며 “대선 승리의 초석을 다질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과거 박근혜 대표 시절 여의도 당사를 매각한 뒤 줄곧 임차인 신세였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4년 ‘차떼기 파동’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에 벼랑 끝으로 몰렸다. 당시 박 대표는 당 쇄신을 명분으로 과감하게 여의도 중앙당사를 매각했고, 여의도공원 건너편 옛 중소기업 전시관 터에 천막당사를 치고 2004년 17대 총선을 치렀다. 한나라당은 당초 개헌 저지선(100석)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121석을 얻었는데, 천막당사 영향 등으로 선전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후 서울 염창동 당사를 쓰다가 2007년 대선을 앞두고는 여의도 한양빌딩으로 둥지를 옮겼다. 한양빌딩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연거푸 배출되면서 ‘정치 명당’으로 소문났다. 한양빌딩엔 앞서 1995년 새정치국민의회의가 자리 잡았고,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회의 간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와 2018년 지방선거 참패를 겪으면서 국민의힘 전신 자유한국당은 여의도를 떠났다. 당세 위축은 물론 당비 수입 감소 등으로 재정 압박이 커지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서울 영등포 우성빌딩 2개 층을 임차해 당사로 썼다. 월 8000만원 정도의 경비를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사 매입 후 선거 3연승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9월 새 당사 매입 후 대선에서 승리하는 등 줄곧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당시 민주당은 여의도 장덕빌딩을 200억원에 샀다. 국회 인근 오피스빌딩에 분산돼 있던 당사 사무실을 10층 건물 한 곳으로 모은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당 조직 정비와 비용 절감이 명분이었다. 매입 자금의 80%를 은행 차입금으로 조달했지만 몇 년 새 여의도 일대 빌딩 시세가 상승하면서 민주당이 이득을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2017년 2월 새 당사 입주 후인 5월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이후 2018년 6월 지방선거와 올해 4월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새 당사 입주 후부터 선거에서 연달아 승리한 것이다.

민주당도 과거엔 세입자 신세로 당사를 여러 차례 옮긴 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여의도 CCMM빌딩을 당사로 사용했다. 그러나 2004년 3월 17대 총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불법 창당자금 수사 사건이 터지면서 여론이 나빠지자 여의도를 벗어나 영등포시장 내 농협 청과물공판장 폐건물로 당사를 옮겼다. 이후 2013년 9월에야 국회 인근 대산빌딩에 입주, 여의도로 복귀했다. 2014년엔 당시 안철수 대표가 이끌던 새정치연합에 흡수·합당되면서 새정치연합이 쓰던 신동해빌딩으로 들어갔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