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모든 여건이 악화됐고 지금은 한창 경영계획을 수립할 시기인데 국정감사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대기업 관계자 A씨는 6일 21대 국회 첫 국감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증인으로 채택되거나 출석을 요구받은 기업인의 ‘급’은 다소 낮아졌지만 관련 기업으로선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건전한 의견 청취보다는 일방적 질타나 압박성 질의가 많기 때문이다.
주요 기업 부사장 등은 국감 첫날인 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담회에 호출을 받았다. 주은기 삼성전자 부사장, 전명우 LG전자 부사장, 양진모 현대자동차 부사장, 강동수 SK 부사장, 임성복 롯데그룹 전무, 유병옥 포스코 부사장, 이강만 한화 부사장, 여은주 GS 부사장, 조영철 한국조선해양 부사장, 형태준 이마트 부사장 등 10명이다. 이들은 국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으나 5일 저녁 급하게 간담회로 형식이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주 부사장 등은 농어촌상생협력기금과 관련해 저조한 기부 실적에 대한 질의를 받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 임원 B씨는 “국감은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정부를 감사하는 것이 주요한 업무인데 왜 매년 기업인들을 경쟁적으로 국회에 불러들이는지 답답하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선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백복인 KT&G 사장, 벤 베르하르트(배하준) 오비맥주 대표 등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서 회장은 온라인 전용관을 만들어 가맹점에 피해를 준 데 대해 질의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등 골목상권과 갈등을 빚는 배달 앱 경영인도 국감에 출석한다.
올해도 국회의원들이 대기업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코로나19 속에 부사장 등이 대신 출석하는 방향으로 일부 조정이 됐다. 기업인 E씨는 “실무진이 대답할 수 있는 지엽적인 사안에 대해 경영진을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국회의원이 ‘자기 홍보’를 위해 기업인들을 경쟁적으로 부른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기업들은 국회가 기업인을 대하는 태도와 내용, 특히 기부 압박 등에 대한 불만이 많다. 한 대기업 관계자 C씨는 “매년 1~2명은 국감에 증인으로 가는데 대부분 8시간 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온다”며 “1분 1초가 바쁜 대표이사 등을 불러선 종일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드는 걸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고 비판했다. 대기업 간부 D씨는 “요구를 안 받아들였다가는 국감에서 호되게 당할 것 같아 상황이 안 좋은 기업도 꾸역꾸역 돈을 내고 있다”며 “국감이 기업 압박 수단으로 전락한 느낌”이라고 했다.
기업은 국회가 좀 더 건설적인 방식으로 기업의 의견을 청취하길 바라고 있다. 재계 관계자 E씨는 “국감에 가면 주요 현안에 대한 답변보다 막무가내의 호통을 듣는 경우가 많다”며 “의원들이 고민하는 입법 사안이나 정책에 대해 기업의 아이디어, 참여 의사를 듣고 싶다면 서면이나 간담회를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제안했다.
강주화 권민지 박구인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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