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 ‘사회적 거리’를 두며 즐길 거리가 많다. 특히 선운산은 도시나 마을과는 뚝 떨어져 있어 더 널찍하게 둘 수 있고, 한적한 옛 읍성에서는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다. 바다에서는 훨씬 더 한갓지게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해마다 9월 중하순부터 10월 초까지 고창군 아산면 선운산도립공원 입구에 레드 카펫을 깔아놓은 듯 붉은 꽃이 넘실댄다. 꽃무릇이다. 석산화(石蒜花)로도 불리는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돌 틈에서 돋는 달래(또는 무릇)’라는 뜻이다. 꽃의 생김새는 수선화보다는 백합을 닮았다.
9월 초순 뿌리에서 꽃대가 올라온 꽃무릇은 백로(양력 9월8일쯤) 무렵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다. 잎 하나 없는 긴 꽃대 위에 가느다란 실타래 같은 수술이 마스카라로 눈썹을 치켜올린 듯 붉은 화관을 이룬다. 잎은 꽃이 진 뒤에 돋아나 모진 겨울을 이겨내지만 이듬해 봄 허망하게 시들어버린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해 흔히 ‘상사화’(相思花)라 부르지만, 진짜 상사화는 따로 있다.
선운산(355m)은 우리나라 3대 꽃무릇 자생지로 유명하다. 울창한 숲, 정갈한 계곡, 고풍스러운 주변 풍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멋스럽다. 이곳 꽃무릇은 대개 9월 20일 전후로 절정의 개화 상태를 보인다. 윤달이 끼고, 늦더위와 가을장마가 기승을 부리면 더 늦어진다.
선운산 골짜기에 촘촘히 뿌리 내린 꽃무릇이 만발하면 산 입구부터 도솔암까지 붉은 융단이 깔린 듯하다. 여인의 입술보다도 더 붉은 꽃무릇이 현란하고 몽환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계곡물에 투영된 나무와 꽃무릇의 붉은 색감이 가을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그 사이에서 가족, 연인들이 인생샷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좌측 산자락을 따라서도 꽃무릇이 한 폭의 풍경화를 펼쳐놓는다. 산책로 주변 산자락도 마치 불이 붙은 듯하다. 꽃 멀미가 날 정도다.
꽃무릇이 빛을 잃더라도 서운할 것 없다. 단풍이 또 한 번 화려한 색의 향연을 펼친다. 숲길에 100년을 훌쩍 넘은 단풍나무들이 빼곡하다. 거목 단풍나무 가지마다 매달린 붉은 단풍이 하늘을 뒤덮는다.
무장읍성(사적 제346호)도 둘러보자. 한적한 무장면 성내리에 자리한 무장읍성은 조선시대의 성곽이자 동학농민혁명 당시 고부 봉기로 군수 조병갑을 몰아내고 해산한 뒤 보복하듯 이어진 관군들의 횡포에 정읍, 부안, 고창 일대의 농민군과 동학세력이 모여 거사를 시작한 역사의 장소이다. 읍성 안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의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고, 주변에는 석성이 둘러 있다.
읍성 입구에 진무루라는 2층 누각이 있다. 무장읍성이 복원되기 전 무장초등학교의 교문이었다고 한다. 진무루를 들어서면 정면에 무장객사가 보인다. 조선시대 때 무장에 내려온 관리나 사신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그 오른쪽으로 무장현 관아에 딸린 누각인 읍취루가 보인다. 관청 손님을 맞고 연회를 했던 곳이다. 누각으로 올라서면 바로 앞 연못과 성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객사 왼쪽 뒤편에는 무장동헌이 자리한다. 조선 명종 20년에 건립돼 1914년 고창군으로 통합되기 전까지 무장현 동헌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 무장수비보병대 사무실로, 광복 후에는 무장초등학교 교실로 사용됐다. 무장읍성에서 가까운 곳에 동학혁명의 본격 시작을 알린 ‘무장기포지’가 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가면 고창의 바다다. 지난 여름 피서객들의 더위를 식혀줬을 구시포해수욕장과 동호해수욕장이 북쪽으로 이어진다. 단단한 모래 해변 덕분에 차 바퀴가 빠지지 않아 인적이 드문 백사장을 달리는 차들이 눈에 띈다.
그 위쪽은 만돌마을이다. 이 마을 앞에 썰물 때면 거대한 규모의 갯벌이 펼쳐진다. 짧은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내려서면 멀리 갈매기들이 앉아 있는 갯벌의 한복판까지 나갈 수 있다. 해 질 녘 물이 빠진 갯벌은 시시각각 다른 색으로 물들며 장엄한 풍경을 빚어낸다. 해넘이 광장 전망 데크에 서면 만돌마을 앞바다의 섬 대죽도와 갯벌 너머로 해 지는 광경 등을 볼 수 있다.
여행메모
선운산 인근 ‘풍천장어’·바지락 별미
고인돌·운곡습지·고창읍성도 볼거리
선운산 인근 ‘풍천장어’·바지락 별미
고인돌·운곡습지·고창읍성도 볼거리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사 나들목에서 빠져 22번 국도를 타고 15분여 달리면 선운산도립공원이다. 고창나들목으로 나오면 19번 국도를 타고 들어가는데 10여 분 더 걸린다. 무장읍성은 고창나들목이 가깝고 편리하다.
고창은 ‘민물 장어의 고장’이다. 선운산 인근에 40여 곳의 ‘풍천장어’집이 성업 중이다. 풍천장어는 일반 민물 장어보다 육질이 단단하고 영양가가 높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살아 맛도 훨씬 고소하다. 드넓은 갯벌을 자랑하는 고창은 국내 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전국 최대 바지락 산지다. 군내 식당 곳곳에서 바지락을 넣어 만든 칼국수, 부침개, 비빔밥 등을 별미로 내놓고 있다.
선운산은 1979년에 도립공원으로, 1984년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면서 도로가 포장되고 관광단지가 개발됐다. 숙박업소, 음식점, 주차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집결해 있다.
고창의 바닷가를 따라 솔숲에 들어서 있는 펜션에 묵는 것도 운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 유적과 운곡 람사르 습지, 고창읍성, 미당문학관, 삼양염전 등 다양한 볼거리도 빼놓지 말고 둘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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