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신웅 (3) 수의사 일 싫어 투기 사업… 실패하고 길바닥 전전

입력 2020-10-08 03:06
김신웅 장로(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964년 경북대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쓰고 수의학과 동기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1960년 나는 경북대 수의학과에 입학했다. 아버지가 키우던 염소가 몇 개월 만에 수십 마리로 늘어나는 것을 보고 축산업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 경북에는 축산학과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전공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공에 큰 관심이 없었다. 간신히 이수 학점을 채우고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 후에도 수의사로 일하지 않고 큰 사업을 하고 싶었다. 주변 사람의 권유로 투기사업을 시작했다. 아버지 재산도 모자라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사업을 했지만,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헤어날 길 없는 참담한 삶의 연속이었다. 돈도 잃고 삶의 의욕도 떨어진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길바닥에서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다.

낙심과 절망으로 가득 찬 피폐한 삶이었다. 무료급식소에서 주는 점심 한 끼로 끼니를 때웠다. 이마저도 시간을 놓치는 날에는 온종일 굶어야 했다. 기차역 대합실 의자와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몸을 뉘고 잠을 잤다. 아버지의 꿈에서 죽어가던 내 모습이 현실화되는 것 같아 더 큰 절망에 빠졌다.

몇 개월이 흘렀을까. 내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더는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경남 함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동물병원을 개설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아내도 만났다. 부농 집안의 딸이었던 아내는 함양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었다. 캄캄한 터널 같은 절망의 동굴에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아내였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게 아닐까’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아내를 만난 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됐다. 이삭을 위해 리브가를 예비하신 것처럼 나를 위해 아내를 예비해주신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했다.

개업한 동물병원은 잘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병원을 폐업하고 대구로 이사했다. 직장도 없이 어렵게 신혼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경북 청송군에 근무하던,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신웅아, 내가 근무하는 이곳에 동물병원이 없는 것 같은데 여기 와서 개업하고 살지 않을래.” 나는 무작정 이불 한 채만 달랑 들고 아내와 함께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청송군 진보면으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렸다. 눈 앞에 펼쳐진 시골 전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푸른 소나무를 뜻하는 청송이란 이름에 걸맞게 빽빽한 소나무 숲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과연 내가 이곳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또다시 실패를 경험하지는 않을까. 나도 나지만 나만 믿고 시집온 아내의 마음은 어떨까.’ 복잡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려하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나는 아내와 함께 작은 교회를 섬기며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씨 좋은 김동철 목사님을 만나 청송에서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