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형제’ 기적의 고갯짓… 보름 만에 의식 찾았다

입력 2020-10-06 04:02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 물청소 작업 중 떠밀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컵라면 용기가 물웅덩이에 잠겨있다. 연합뉴스

끼니조차 챙겨주지 않은 엄마가 외출한 사이 라면을 끓이다 집에 불이 나 중태에 빠진 인천의 소년 형제가 보름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그 사이 ‘치료비에 써달라’며 전국에서 모인 기부금 1억9000만여원이 이들 ‘라면 형제’ 앞에 놓였다. 길게 남은 화상 치료를 견디고 완치되면 형제는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으로 보내질 전망이다.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화상 전문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라면 형제가 추석 연휴 첫날인 같은 달 30일 의식을 회복해 일반 병실로 옮겼다.

중환자실에서 형제는 숨을 쉬기 위해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야 했다. 사고 당시 많은 연기를 들이마신 탓에 호흡기가 상해 혼자서는 숨을 쉴 수 없었다. 형제는 사고 11일 만인 지난달 25일 처음 눈을 떴지만 움직이거나 말을 제대로 할 수는 없었다.

눈을 뜬 지 5일 만에야 의식이 또렷해졌다. 온몸의 40%에 3도 화상을 입은 형 A군(10)은 가족과 대화할 만큼 회복했다. 온몸 5%에 1도 화상을 입은 동생 B군(8) 역시 의식을 되찾고 고갯짓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호흡기가 많이 상한 B군은 대화가 어렵고, 몸이 굳어 움직이기 힘든 상태다.

형제는 중환자실에서 지낸 날보다 더 오랫동안 일반병실에서 보내야 한다. 인천시 관계자는 “간신히 의식만 되찾은 수준일 뿐 완쾌되려면 병원에서 긴 이식치료를 또 받아야 한다”며 “특히 B군의 경우 호흡기를 많이 다쳐 죽을 고비를 넘긴 상태라 완쾌는 아직도 멀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4일 초등학교 4학년 A군과 2학년 B군 형제는 엄마 C씨(30)가 전날 밤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자 둘이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실수로 불을 내 중화상을 입었다. A군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이 시커멓게 탄 빌라 안방 침대 위 아동용 텐트에서 A군을, 침대와 맞닿은 책상 아래에서 B군을 찾아 구조했지만 형제 모두 의식이 없었다.

불이 나기 전 라면 형제가 오랫동안 돌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엄마 C씨는 수년 전부터 형제를 학대·방임한 혐의로 최근 검찰에 송치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학교와 공공기관마저 형제를 돌보지 못했다. 학교가 비대면 수업을 시행하면서 형제가 직접 끼니를 해결해야 했고, 아동돌봄기관의 가족 면담이 미뤄지면서 C씨의 무책임한 방임이 이어졌다. A군 가족은 경제적 형편마저 넉넉하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로 매달 수급비와 자활 근로비 등 160만원가량에 의존해왔다.

서로에게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형제의 비극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기부금이 쏟아졌다. 사단법인 학산나눔재단 등을 통해 약 1억9000만원이 모였다. 대부분 화상·재활 치료비로 쓰일 예정이다.

형제의 다음 행선지는 미정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인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위탁가정으로 보낼 것인지 아동복지시설로 보낼 것인지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