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이 어디까지 치솟을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논란이 촉발된 것은 국회 예산정책처와 기획재정부가 상반된 전망치를 내놓으면서다. 각자 정부 지출 증가율과 인구, 거시경제 등에서 다른 전제를 깔았기 때문인데 이를 둘러싼 정부의 재정 건전성 논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산정책처는 지난달 28일 발간한 장기 재정전망 보고서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올해 44.5%에서 꾸준히 증가해 2060년에는 158.7%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기재부는 같은 달 초 발표한 장기 재정전망에서 국가채무비율이 점점 증가하다가 2045년 84~99%로 정점을 찍은 뒤 2060년에는 64~81%로 낮아질 것으로 관측했다.
기재부와 예산정책처의 전망이 2배 가까이 차이가 난 이유는 정부 지출 증가율과 인구 추계, 거시경제 전망 등에서 서로 다른 전제를 깔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도 정부 지출 증가율 설정을 다르게 한 점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단 기재부는 매년 신축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재량지출 증가율을 경상성장률보다 낮게 설정했지만 예산정책처는 경상성장률 수준(연평균 2.2%)으로 설정했다. 기재부는 2045년 이후에는 정부가 지출 증가 속도를 관리할 수 있다고 전제한 반면, 예산정책처는 공적연금이나 기초연금 등 각종 복지 관련 의무 지출이 빠르게 증가하는 탓에 총지출 증가율이 필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구 전망의 경우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장래인구특별추계’ 자료를 똑같이 사용했지만 어떤 시나리오를 택했는지가 달랐다. 기재부는 저위 추계는 빼고 중위와 고위 추계만 언급했지만 예산정책처는 저위, 중위, 고위 추계를 모두 반영했다. 중위 추계는 보통 수준, 고위 추계는 인구가 증가하는 방향의 시나리오, 저위 추계는 인구가 적게 증가하는 방향의 최악의 시나리오다.
각자 가정한 거시경제 전망도 달랐다. 예산정책처는 자체 전망치를 사용한 반면, 기재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치를 인용했다. KDI는 2020~2030년 실질성장률을 2.3%로 전망했지만, 예산정책처는 같은 기간 2.0%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어떤 전제와 가정을 했느냐에 따라 결괏값인 국가부채비율 예상치가 크게 달라지는 탓에 이를 둘러싼 논란도 앞으로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정책처는 ‘재정동향&이슈’ 보고서에서 “정부는 재정의 지속가능성 유지를 위한 지속적 논의를 하기 위해 보다 상세하고 투명한 장기 재정 전망 산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지출구조조정 가정이 전제되지 않는 등 더욱 어려운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기재부는 현재 상황에서 적합하고 합리적인 전망을 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정부가 국가채무 전망치를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는 지적을 전면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기재부는 “정부의 장기재정전망은 과거 총지출 증가 추이와 선진국 사례 등을 감안해 가정한 것”이라며 “국가 채무에 영향을 미치는 세입여건 악화와 지출 증가 등도 충분히 반영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 이후 국가채무 증가 추세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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