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돈 씀씀이를 일정 수준 이내로 제한하는 재정준칙 도입 방안이 5일 발표됐으나 기준이 너무나 느슨하고 구속력도 떨어져 실망스럽다. 여당의 반대로 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결국 있으나마나 한 수준의 재정준칙이 나온 것이다. 확장 재정 기조를 저해해선 안 된다는 청와대와 여당의 의지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물이다.
정부는 2025년부터 국가채무 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이내로,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기로 했다. 실행 시기는 내년이 아니라 무려 5년 뒤다. 차기 정부가 할 일로 넘긴 것이다. 기준 자체도 느슨하다. 기획재정부가 2016년에 추진했던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비율을 GDP 대비 45% 이하,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야당 의원 발의로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동일한 기준을 담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국가채무 비율 상한선이 45%에서 60%로 크게 올라갔다. 또 관리재정수지가 통합재정수지로 대체됐다. 통합재정수지는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것이고,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것이다. 정부의 재정 건전성을 보다 정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관리재정수지이지만, 이것의 적자 폭이 더 크기 때문에 여당의 요구대로 통합재정수지를 기준 지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예외 규정도 뒀다. 전쟁이나 글로벌 경제위기, 대규모 재해를 맞았을 때는 확장 재정을 펼 수 있도록 준칙 적용이 면제되며 경기 둔화 상황에선 기준 완화가 가능하다. 최소한의 예외 규정을 두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정부가 재정준칙 도입 근거만 국가재정법에 담고 준칙의 수량적 한도는 시행령에 넣기로 한 것은 문제다. 시행령은 국회를 거치지 않고 정부가 마음대로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준칙의 수량적 기준이 법에 명시되지 않음에 따라 구속력은 미미해졌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우리 재정 여건을 고려한 한국형 재정준칙”이라고 설명했다. 엄격함 대신 유연성에만 방점을 찍은 준칙이다.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의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가 한국과 터키 둘뿐이니 ‘우리도 만들었다’는 선언적 의미의 준칙만 내놓은 것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급증하는 나랏빚에 제동을 걸 생각이 없어 보이는 정권의 태도가 너무 안이하다.
[사설] 정권이 빚 줄일 생각이 없으니 재정준칙도 맹탕
입력 2020-10-06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