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청년’의 이름으로 당신을 응원합니다”

입력 2020-10-06 03:01
서울 송학대교회 청년들이 4일 교회 식당에서 고시생에게 전달할 식권과 카페 쿠폰, 형광펜과 꽃다발 등 추석 선물을 포장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4일 오후 3시, 서울 동작구 송학대교회(박병주 목사) 청년부 예배가 끝난 후 30여명의 청년이 교회 식당에 모였다. 테이블 위에 미리 준비된 종이봉투를 하나씩 집어 들고는 물건을 담기 시작했다. 추석명절 연휴에도 남아서 공부하는 고시생들을 위해 교회가 준비한 선물이다.

종이봉투엔 노량진 고시촌 주변 한 뷔페식당에서 쓸 수 있는 식권 2장과 카페 음료 쿠폰 1장, 작은 꽃다발과 형광펜 세 자루가 담겼다. 정성스럽게 응원 문구를 적은 엽서도 함께였다.

“이름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같은 ‘청년’의 이름으로 당신을 응원합니다.”

포장된 155개의 봉투는 고시원 6곳으로 전달됐다. 교회가 평소 관계를 맺고 심방해 온 고시원으로, 사정이 어렵거나 부모님 지원 없이 자기 힘으로 공부하는 청년들이 많은 곳이다. 서경연(55) 권사가 운영하는 대원고시원도 그중 하나다. 송학대교회 청년들을 익숙하게 맞이한 서 권사는 선물을 받아들며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서 권사는 “교회가 이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했는데 고시생들에게 따뜻한 음식과 정을 전할 수 있어서 늘 고마운 마음”이라며 “무뚝뚝한 남학생들이 지내는 곳이라 다들 겉으로는 표현을 잘 안 하지만, 분명 열심히 공부하는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되고 나중에도 생각나는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활동은 교회가 명절 때마다 진행하는 ‘고명 프로젝트’의 하나다. 원래는 고시생들에게 직접 요리한 한식 도시락을 전달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올 추석에는 도시락 대신 식권과 커피 쿠폰을 구매해서 전하기로 했다. 고시원의 추천을 받아 4명에게는 장학금도 전달할 예정이다.

고명 프로젝트는 2017년 부임한 박병주 목사와 이한일 청년부 부목사의 아이디어다. 교회는 노량진 고시촌 인근에 있고, 청년부 성도의 10% 정도가 고시생이다. ‘고명’은 ‘고향 명절 음식과 같은 명품 도시락을 대접한다’는 의미로 ‘고향’과 ‘명품 도시락’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박 목사는 “부임 후 지역의 약한 자, 소외된 자들이 누가 있는지 살피던 중 수만 명의 청년세대가 노량진에서 시험을 위해 혼자 살고 있음을 알게 됐다”며 “변방에서 힘들어하는 이웃의 곁에 있는 게 교회의 역할인 만큼 고시생을 섬기자고 뜻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예산의 절반은 청년들의 힘으로 마련했다. 청년부는 올해 초부터 지역선교헌금을 따로 모으고 있다. 택시비, 커피값 등을 줄여서 지역사회를 위해 내놓는 헌금이다. 이렇게 모인 헌금은 고명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교회 주변에 있는 베이비박스, 고아원 등을 지원하는 일에도 쓰인다.

고시생이었던 청년들도 봉사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정원(26)씨는 2018년 추석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중 교회의 도시락을 받았고, 합격한 후에는 명절마다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최씨는 “추석에 고향에도 못 가고 남아 공부하고 있었는데, 정성이 많이 들어간 도시락을 받아서 감동했다”며 “누군가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청년들에게 위로가 된다”고 전했다.

이 목사는 “평소 청년들과 예수님 삶의 모습을 따라 살아간다는 교회의 본질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었다”며 “청년세대가 많은 지역에 교회가 있는 만큼 청년들이 힘을 모아서 더 많은 이웃을 섬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