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낙태와 여성의 자기결정권

입력 2020-10-06 03:08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후 여성 단체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며 낙태 전면 허용을 관철하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자기결정권은 과연 무엇인가.

자기결정권의 시작은 창세기의 인간 창조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흙으로 빚으시며 무조건 신의 명령에만 순응하는 로봇보다는 스스로 자유로이 선택해 하나님을 찾길 바라셨다. 그래서 인간에게만 자유의지를 주셨다. 이것이 자기결정권의 출발이다. 이는 지정의(知情意)를 갖춘 인격체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다.

생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원칙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자율성 존중의 원칙이다. 모든 결정은 자기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암 환자가 치료를 받을 때도 가족이나 의료진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환자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수술과 항암제 사용, 방사선 치료 등의 여부를 환자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무런 정보 없이 결정해선 안 된다. 생명윤리에선 이를 ‘충분한 설명 후 동의’라고 말한다. 수술 방법과 합병증, 항암제 종류와 부작용, 방사선 치료의 기본 원리와 후유증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은 후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여성은 낙태 과정에 몇 차례 자기결정의 기회를 얻는다. 임신은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자기결정의 결과다. 강간을 제외한 모든 성관계는 여성의 동의와 결정으로 이뤄지고 임신은 그에 수반된 결과물이다. 자기결정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 여성도 남성만큼이나 책임의 주체인 것이다.

문제는 생명이 잉태될 때부터 양육에 이르기까지 이런 책임이 수반되는 중대한 결정에 충분한 정보를 갖지 못하다는 것이다. 성관계가 의미하는 사랑 쾌락 생명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한 뒤 성을 누리는 것인가.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말의 의미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낙태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자신이 목숨 걸고 보호해야 할 자신의 아기를 스스로 해치는 잔인한 자기결정도 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행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들은 낙태의 정의와 시술법, 후유증과 합병증이 무엇인지, 만일 임신을 지속했을 때 정부의 지원과 사회적 제도가 준비되는지, 아기가 태어나고 엄마가 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 어떤 설명도 듣지 않은 채 병원의 차가운 시술대 위에 오른다.

자기결정권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결정으로 다른 사람이 고통받거나 생명을 잃는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유흥주점에서 신나게 놀 자기결정의 권리가 왜 없겠느냐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전파해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뜨린다면 자기결정권은 일정 부분 제한받아야 마땅하다.

성관계의 자기결정권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생명의 잉태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임신 중단의 자기결정권은 행사할 수 있겠지만, 배 속의 엄연한 생명체의 소중한 생명권도 고려돼야 한다. 낙태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기에 앞서 임신의 자기결정권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 곧 낙태법 개정 논의가 국회에서 급물살을 탈 터인데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제대로 토의하길 기대한다. 낙태하기 전 반드시 낙태와 임신 지속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상담을 받고 숙려할 수 있는 기간을 갖도록 하는 법안이 생겨야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가 악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선을 선택하는 자기결정이길 기대해 본다.

박상은(샘병원 미션원장,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