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나무는 얼마나 될까. 우리는 얼마나 잘 숲을 보전하고 그 안의 생명과 관계를 맺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동안 잘 지키고 돌보지 못한 게 사실이다. 해마다 한반도만 한 열대림이 사라진다. 하루에도 100종 이상의 피조물이 사라지고 있다.
교회는 나무를, 숲을 얼마나 품고 있을까. 특별히 지키고 돌보는 나무가 있을까. 교회에 나무가 있고 없고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가까이에 울창한 숲이라도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스도인은 수천 년 역사 가운데 숲과 더불어 신앙을 지켜왔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루에 초목을, 특히 각종 유실수를 에덴의 숲에 둬 인간 생존의 필수요건으로 만들었다.
신앙적으로 중요한 경험을 하는 곳도 숲이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드린 곳은 모리아산이었고, 노아 홍수 이후 새 역사가 시작된 곳은 아라랏산이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도 시나이산이며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선포된 곳도 에발산과 그리심산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 감람산에서 밤새워 기도했고 갈보리산에서 산상설교를 선포했다. 다볼산에선 변형된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였다. 무엇보다 산에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셨다. 신앙적으로나 생태적으로 필수적인 공간이 숲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분별하게 숲에 길을 내거나 건물을 짓고, 때로는 물건을 얻기 위해 숲의 나무를 베고 있다. 숲에 의지해 사는 생명은 애당초 배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대로 숲이 사라지면 우리와 수많은 생명의 생존이 위협받는 것은 물론, 창조주에 관한 신앙의 뿌리까지 흔들릴 수 있다.
요즘 교회 건물은 주로 육중한 대리석이나 유리,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작은 정원이나 숲은커녕 그 흔적도 찾기 어렵다. 있더라도 교회 주변에 형식적으로 심은 나무 몇 그루가 고작인 경우가 적잖다.
교회 안팎에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공간을 살펴보자. 교회 마당과 주차장, 벽면과 옥상 등 어떤 공간이든 다 정원이요, 숲이 될 수 있다. 함께 만들어 가꾸는 정원 숲은 공동체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고, 기후위기 시대를 맞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해줄 것이다. 쫓아낸 생명이 다시 돌아옴으로 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공존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교회 가까이에 있는 정원과 숲의 나무를 살피고 그 이름을 기록해보자. 교회 안에 소모임을 만들어 기록하되, 자주 시간을 내 묵상하며 걸으며 ‘교회 숲 네이처링’ 활동으로 이어가 보자. ‘교회숲 네이처링’은 교회 안팎에서 자연을 관찰·기록·공유하는 활동이다. 우리 단체에서도 이달 말 온라인 공유플랫폼을 기반으로 시작한다. 태초의 숲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다시금 온 생명과 하나로 연결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혹 눈에 띄는 곳이 없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그럴수록 더 열심을 내야 한다. 주변 공터나 쓰레기 불법 투기장, 시나 구 소유의 빈터를 찾아 마을의 정원과 숲으로 가꾸자. 각각의 장소에 어울리는 식물을 찾아 심고 가꾸며 이를 기록하고 공유하자. 세상 속 생명의 단절된 관계를 이을 수 있을 것이다. 자두 호두 체리 사과 배 등 유실수와 각종 허브 약초 다년생 식물로 숲을 만들면 손도 덜 가고 생태적이며 순환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캠페인, 야생화 단지 및 빗물 저금통 만들기, 토종 씨앗 게릴라가드닝 등은 교회 및 마을 공동체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교회 정원 숲으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을 풍성히 누릴 날을 기대한다. 모든 생명이 창조의 땅 지구에서 돋아난 푸른 움과 더불어 다시금 하나로 이어지는 꿈, 교회 숲에서 ‘참 좋다’고 말씀하는 하나님과 더불어 즐겁게 거니는 꿈이 이뤄질 그날을.
유미호(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