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불필요한 여행 자제 권고가 내려진 가운데 주무 부처인 외교부의 수장 배우자가 여행 등을 목적으로 여러 번 출국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은 “국민은 성묘도 못 하는데 장관 남편은 해외여행을 갔다”며 ‘내로남불’이라고 비난했고, 여당 내에서도 “적절치 못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송구하다면서도 귀국을 요청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강 장관의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는 요트 구매와 여행을 위해 지난 3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교수가 요트 구매 및 여행 계획을 수개월 전부터 자신의 공개 블로그에 올리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그는 여행 목적이 뭐냐는 질문에 “자유여행”이라고 답했다. 정부의 해외여행 자제 권고와 관련해선 “코로나19가 하루 이틀 안에 없어질 게 아니잖아요. 그러면 맨날 집에서 그냥 지키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이 교수의 미국행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정부가 내린 특별여행주의보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외교부는 지난 3월 전 국가·지역에 대해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특별여행주의보는 해외여행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여행을 취소하거나 연기할 것을 권고하는 조치다.
정부의 이런 조치를 무시한 이 교수의 해외여행은 처음이 아니다. 이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지난 2월 8~17일 일행 5명과 베트남 호찌민을 여행한 사실도 적었다. 정부는 같은 달 11일 베트남을 포함한 6개국에 우선적으로 해외여행 최소화를 권고하면서 ‘다중 밀집장소’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했는데, 이 교수는 블로그에 전쟁박물관과 대형 해산물 요릿집 등을 방문했다고 적었다.
이 교수는 6월에는 그리스가 한국발 여행객을 입국시킨다는 잘못된 소식을 알고 요트 구입을 목적으로 그리스 여행도 계획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선 비난이 쏟아졌다. 최형두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은 정부의 해외여행 자제 권고에 따라 긴급한 해외여행을 자제하고 추석 성묘조차 못 갔는데 주무 부처인 외교부의 장관 남편은 마음대로 해외여행을 떠났다”며 “국민에게 절망과 분노만 가져다주는 정부”라고 비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의 눈으로 볼 때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외교부 간부 회의에서 “국민께서 해외여행 등 외부 활동을 자제하시는 가운데 이런 일이 있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회의 뒤엔 기자들에게 “여행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설득도 했다”면서 “(남편이) 워낙 오래 계획하고 미루고 미루다 간 것이라 귀국하라고 얘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 ‘캔터51 미스트리스V’라는 요트를 구매할 것으로 보인다. 이 요트는 뉴욕주 플래츠버그에 있는 요트로, 15m 길이에 선실 3개를 갖춘 모델이다. 이 교수 블로그에 따르면 요트 구매비용은 12만달러다. 요트 매매사이트에는 이 요트가 이미 팔린 것(sold listing)으로 돼 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