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시나리오’도 검토… 한달 앞둔 미대선 초유의 사태

입력 2020-10-05 00:11
지난 1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치료에 들어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미 대선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유례없이 확대된 우편투표에 대한 논란과 개표 혼란, 대선 불복 우려에 후보 유고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트럼프 대선 캠프는 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모든 유세 일정을 일시적으로 연기하거나 온라인 행사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선 막판 분수령으로 꼽혀온 TV 토론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부통령 후보 간의 7일 토론은 예정대로 진행되지만, 15일로 예정된 대통령 후보 간 2차 토론은 무산될 수도 있다.

포린폴리시 등 미국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 유고 시 미 대선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분석하는 보도들을 3일 일제히 내놓았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건강 문제가 어떻게 되든 11월 3일로 예정된 대선이 미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미국은 헌법에 따라 의회가 대선일을 정하게 돼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선거 연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공화당이 우세를 점하고 있는 상원에서 선거 연기안이 통과되더라도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에서는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치를 수 없는 상황이 될 경우 공화당은 공화당전국위원회(RNC)의 규정에 따라 새로운 후보를 선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주에서 우편투표 등 조기투표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이기 때문에 새 후보를 내고 이를 선거에 반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

선거일과 선거인단 투표일(12월 4일) 사이에 트럼프가 사망한다면 상황이 매우 복잡해진다.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을 결정하는 과정이고, 선거인단 투표에서 538명 중 최소 270명의 표를 얻은 후보가 승리하는 간접 선거다. 문제는 대부분 주에서 후보가 사망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시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령 미시간주는 법률상 후보가 사망하는 경우를 상정하지 않고 투표용지에 올라 있는 후보에게만 투표하도록 돼 있다. 반면 인디애나주는 관련 법에 “후보 사망 시 교체된 후보에 투표한다”고 정해놓았다.

선거인단 투표일과 의회 승인일(1월 6일) 사이에 트럼프가 유고할 경우에도 관련 법을 어떻게 해석할지 논란이 불가피하다.

미 수정헌법에 따르면 취임식 이전에 대통령 당선인이 사망할 경우 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통령 당선인’의 자격을 두고 해석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 획득 조건이 ‘선거인단 투표 승리’인지 ‘의회 승인’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의회 승인일 이후 트럼프가 사망한다면 상황이 비교적 단순해진다. 이 경우 헌법에 따라 부통령 당선인이 1월 20일로 예정된 대통령 취임식에서 대신 취임하게 된다.

포린폴리시는 트럼프가 사망하는 상황을 ‘미지의 수(uncharted waters)’라고 표현하며 법 해석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종국에는 법원이 미 대선을 좌우하는 키를 쥐게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대법관 후임으로 지명한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가 임명될 경우 선거 이후 법적 공방에서 공화당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