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복무 특혜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지난달 말 관련자들을 무혐의 처분했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추 장관이 보좌관에게 군부대 지원장교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으로 드러나면서 여야는 추석연휴 기간에도 공방을 벌였다.
야당은 “추 장관의 거짓말이 들통난 것”이라며 특검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당은 일축한 상태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사안을 정쟁 수단으로 삼아 끌고 가는 건 국민들이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할 것”이라며 “특검 사안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여야는 오는 12일 열릴 예정인 법무부 국정감사에서도 설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침묵했던 추 장관도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기점으로 적극 반박에 나섰다. 추 장관은 추석 다음날인 지난 2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검찰 수사가 혐의 없음으로 마무리됐지만 야당과 보수 언론이 본질에서 벗어난 ‘거짓말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아들의 병가와 연가는 대한민국 군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보장받는 국민의 기본권이며 그 범위 안에서 적법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추 장관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5선 중진 의원이자 여당 대표까지 지낸 추 장관은 왜 거친 발언을 계속할까. 국민일보는 추 장관을 오래 지켜본 주변 인사들을 통해 그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거친 입’이 불러온 정치적 효과를 분석했다.
“‘자식’에 감정 격해졌다”
먼저 자녀를 향한 공세에 평소 잘 챙겨주지 못했던 정치인 부모로서의 미안함과 애틋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있다. 추 장관은 당대표 시절에도 사석에서 아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몇 차례 언급했다고 한다. 주로 같은 처지에 있는 여성 정치인들과 동병상련을 나눴다.
추 대표와의 대화를 기억하는 민주당 의원은 “아들이 카투사에 합격했다고 해서 부러워했더니 추 대표가 ‘제대로 밥도 못 해줬는데 군대 보내니 너무 좋다. 평소에 잘 챙겨주지 못하는데 그나마 군대에 가면 애가 아픈지, 밥은 제대로 먹는지 그런 것이라도 나라가 챙겨주니까’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의원도 비슷한 시기 아들을 군에 보냈는데, 당대표였던 추 장관으로부터 “아들 입대할 때 훈련소 안 가면 평생 한이 돼요. 아무리 급해도 다녀오세요”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정치권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자녀 문제가 제기되자 감정이 격해졌다”고 봤다. 한 중진 의원은 “정치인 부모가 갖고 있는 최고의 미안함이 바로 가족이고, 그중에서도 자식”이라며 “나도 자식들하고 제대로 못 놀아준 게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인들은 다들 이렇게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있는데, 아들이 꾀병을 부렸다는 것처럼 몰고가니까 더 화가 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 장관 주변에서는 야당과 언론이 유독 추 장관에게 각박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계속 만들어지는 ‘설화’의 밑바탕에는 여성 정치인에 대한 멸시와 편견이 깔려 있다는 인식이다. ‘여성은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봉건적인 의식 구조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보수야당과 언론이 이를 더 불편하게 본다는 의미다.
추 장관의 측근 인사는 “여성 정치인이어서 더 엄격한 잣대와 기준이 적용된 것 같다. 자꾸 언론과 야당에서 ‘화법’ ‘태도’를 이야기하는데 그건 본질이 아니다”며 “정치권이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겁박하고, 언론은 망신주기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했다.
추 장관 본인도 자신이 여성 정치인이어서 더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추 장관은 “내가 여성 당대표여서 조금 더 무시받는 경향이 있다”며 “그래서 우리는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 논란을 대하는 추 장관의 화법이나 태도는 ‘여성 정치인’과는 무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여성 중진 의원은 “추 장관이 특별히 여성이라고 해서 불이익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며 “요즘은 남녀 여부가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한 리더와 독불장군 사이
추 장관의 전투적 기질, 자존심 강한 캐릭터가 이번 논란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추 장관은 정계 입문 때부터 당차고 강했던 사람”이라며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추 장관은 동료 의원에게도 따박따박 따지곤 했다. 추미애가 따뜻하단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고도 했다.
당내에선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 관련 논란이 불거졌을 때를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송 전 장관은 참여정부 때인 2007년 11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때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후보가 ‘북한에 반응을 알아보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상임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던 추 장관은 캠프 관계자들이 제대로 된 보고나 대응을 하지 않았다며 돌연 선대위 회의를 소집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추 대표가) 자리에 없던 친문 핵심 인사들까지 다 찾아오라고 했다”며 “회의 시작 후 처음부터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보고 지적하다가 문을 닫고 두 시간을 더 혼내는데 정말 무서웠다”고 돌아봤다.
2018년 3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파문 당시에도 추 대표는 곧바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안 전 지사의 출당 및 제명을 결정했다. 최초 보도 후 제명까지는 단 2시간이 소요됐다. 빠른 대응으로 후폭풍을 최소화한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스스로 결단을 내린 뒤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기질은 종종 불화를 일으켰다. 2017년 4월 김영주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추 장관의 독단적인 선대위 구성에 항의하면서 회의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동교동계의 한 원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 장관에게 진영논리를 떠나 합리적이고 중용을 중시하는 정치인이 되기를 기대하셨는데, 추 장관도 초심을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 되물어볼 여지는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보수 기득권, 기세로 눌러야”
장관 이후를 내다보는 그가 당내 친문 표심에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특히 집권 4년 차인 문재인정부 핵심 과제인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아들 논란을 정면돌파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여당으로서는 문재인정부 4년 차에 접어든 이번 정기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검찰 개혁 관련 핵심 입법을 마무리짓는 게 최우선 과제다. 추 장관은 그 중심에 서 있고, 청와대의 지지까지 확인한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청와대에서 열린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개혁 전략회의에 추 장관을 대동하고 등장한 것은 여러 논란에도 신임한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추 장관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는 ‘원죄’로 시련을 겪다가 2015년 문재인 당대표 체제에서 최고위원을 맡았다. 이후 당내 친문과 비문의 극심한 갈등 속에서도 문 대표 지지에 앞장서면서 친문 진영의 신뢰를 얻었다. 이듬해 8월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친문 표심’을 등에 업고 54%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대표에 선출됐다.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추다르크’식 스타일은 변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당장 내년 4월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추 장관은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검찰 개혁의 선봉에 섰다는 상징성, 보수기득권 세력과의 대결에서 구축한 전사 이미지는 당내 후보 경선에서 친문 지지층에게 어필할 여지가 충분하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추 장관 관련 논란은 여야 간 진영 싸움이 본질”이라며 “그걸 모를 리 없는 추 장관도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거친 발언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추 장관이 보수야당과 대립각을 세우는 현 시점에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일 경우 되레 수세에 몰릴 것이란 시각도 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추 장관이 지금 태도나 대응 방식을 바꾸면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향후 서울시장 선거나 차기 대선 등 대중정치인으로 나설 경우를 대비해 아들 논란과 관련, 야당을 기세로 눌러놔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상진 김판 이현우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