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 공익법인에 기부하면 안되나”… 세법 해석 현장서 혼란

입력 2020-10-05 04:09
국민일보DB

한 공익법인에서 일하는 A씨는 최근 소속 법인에 기부를 많이 했다는 이유로 일터를 떠나야 할 황당한 처지에 놓였다. A씨는 받은 월급 중 일부를 떼어 10년 넘게 소액 기부를 해왔다. 법인의 사업 취지에 공감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A씨의 누적 기부금액이 2000만원을 넘어서자 문제가 생겼다. 세법에서 공익법인에 다니는 직원이 소속 법인에 2000만원 이상 기부하면 법인이 해당 직원 급여의 100%를 가산세로 납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산세는 일종의 벌금성 세금이다. A씨가 법인 소속이면 법인은 계속 벌금을 내야 한다. A씨는 4일 “재단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기부를 했는데 이제는 짐만 되는 것 같아 떠나야할 것 같다”고 속상해했다.

공익법인에 적용되는 일부 세법 규정이 ‘기부금의 부정한 사용을 막겠다’는 입법 취지와는 다르게 적용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소규모 공익법인들은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가 뒤늦게 이 문제를 인지하게 됐다. 소액 기부를 해온 직원을 서류상 퇴사로 처리하거나 다른 관련 업체로 전직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해당 법조항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3조(공익법인등 출연재산에 대한 출연방법등)와 제48조(공익법인등이 출연받은 재산에 대한 과세가액 불산입등)다. 규정은 출연자(기부자)를 ‘해당 공익법인의 총출연재산가액의 100분의 1에 상당하는 금액이거나 2000만원 중 적은 금액을 출연한 자’로 정의한다.

만약 이 출연자 또는 출연자의 특수관계인이 법인에서 일하면 받는 급여만큼 가산세가 부과된다. 자산 20억원 공익법인이든 2000억원 공익법인이든 일단 법인 소속 직원이 2000만원 이상을 기부하면 해당 직원의 급여를 전부 벌금성 세금으로 내야한다는 뜻이다.

이 규정은 임직원이 출연자로서 법인에 기부하고 그 돈으로 급여를 받으면 기부금이 목적사업에 사용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졌다. 또 출연자의 기부금이 많아질수록 법인 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부 상한액을 제시한 것이다.

다른 공익법인에서 일하다 이직 직후 3000만원을 기부한 B씨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조금만 일찍 기부했다면 법인에 가산세를 물리게 할 뻔했기 때문이다. B씨는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소명자료 제출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가산세 부과 규정이 법인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임원진에게는 오히려 관대하다는 것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8조에는 ‘공익법인의 현재 출연자 또는 특수관계인이 전체 이사 수의 5분의 1을 초과하면 가산세를 부과한다’고 돼 있다. 예를 들어 이사 중 20%가 출연자와 특수관계인이라 해도 급여 수령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인에 영향력 행사가 어려운 일반 직원은 기부금액이 2000만원만 넘어가면 바로 가산세가 붙는다. 법인이 지불한 가산세가 누적 1000만원이 넘어가면 지정기부금단체 자격이 취소될 수도 있다.

이에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시행령을 보면 2000만원 이상을 기부한 임직원이 법인의 특수관계인 지위고, 이들이 법인 이사 수의 과반을 차지할 때 규제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김덕산 한국공익법인협회 회계사는 “실무적으로 기재부와 세무서에서 서로 다른 걸 요구해 현장에서 혼란이 일어난다”고 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