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입력 2020-10-06 03:04

성경을 읽다가 보면 ‘유레카’를 외치면서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책이 아니었구나, 성경은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지도였구나 하고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우리가 인생의 길을 갈 때 어떤 길을 선택해서 가야 하는지 그 길을 알려주는 ‘구원으로 향하는 지도’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길은 예수님이 먼저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이요 희생하는 길입니다. 그 길은 세상이 좋아하지 않는 길이며 좁은 길입니다. 타협하지 말아야 할 길이며 오직 유일한 길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입니다.(마 13:46)

그래서 우린 신앙생활을 하며 인생의 두 갈림길에 머물렀을 때, 그리고 선택을 할 때 성경에서 제시한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등장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성경에서 제시한 길을 가장 먼저 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전염성이 있는 한센병자에게 손을 대시고 기도해주셨고 ‘희생’하셨습니다. 죄인들과 함께하시는 것을 넘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제자들에게 ‘목숨’을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길을 갈 때 희생하는 길과 전부를 드리는 길을 가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느냐’ 아니면 ‘비대면으로 전환해 이웃사랑을 하는 것이 맞느냐’란 주제로 한국교회가 많이 갈리는 것을 봅니다. 종교개혁 시대 당시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을 때 마르틴 루터는 피신을 가지 않고 이웃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그와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것이 신앙의 계보라고 말을 합니다. 이웃사랑을 위해 예배를 비대면으로 전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인생의 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졌을 때, 그리고 선택해야 하는 길에 다다랐을 때 그는 ‘무엇이 내가 희생하는 길인가’ ‘무엇이 전부를 드리는 길인가’를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상고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마르틴 루터는 피신하지 않고 남는 쪽을 선택했다고 확신합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길은 전부를 드리는 길이었고 희생하는 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코로나19 시대에 모든 신앙인에게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목회자로서 코로나19 시대에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구상권 청구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혹 교인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또 ‘이웃사랑을 하지 않는 교회로 낙인찍히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이는 목회자뿐 아니라 성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과 우리의 사랑은 반드시 예수님 앞에서 증명이 될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비대면 예배로의 전환이 맞는지를 넘어서 우리가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희생의 길이고, 어느 선택이 전부를 드리는 것인지, 또 어느 길이 십자가의 길인지를 잘 분별해서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두렵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러했듯이 우리도 예배에 있어서 예수님께 전부를 드리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유제중 목사(화평교회)

◇화평교회는 서울 광진구 구의동과 군자동, 강동구 길동과 고덕동에 각각 나뉘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모일 때 예수님이 함께해주신다’는 것을 믿는 십자가와 복음 그리고 선교적 사명에 부르심이 있는 공동체적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