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자기야 나 얼마나 사랑해?

입력 2020-09-30 04:05

“자기야 나 얼마나 사랑해?” 남자들이 여자 친구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이때 남자들이 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답은 무엇일까. ‘미운 우리 새끼’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여자 연예인이 5명의 미혼 남자 연예인에게 ‘연애 능력 고사’라는 이름으로 던진 질문이다.

한 남자 연예인이 눈치를 보며 자신 없는 표정으로 “하늘만큼 땅만큼~”이라고 답했다. ‘연애 능력 고사’임을 생각하면 좀 더 낭만적인 답이 있을 거로 생각했나 보다. 사실 남자들이 이 이상의 답을 생각해내기는 어렵다. ‘하늘만큼 땅만큼’보다 더 큰 사랑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여자 연예인은 “땡!”을 외쳤다. 이때 한 남자 연예인이 “나만큼 사랑해!”라고 의미심장한 답을 던졌지만 여자 연예인의 반응은 싸늘했다. “더이상 사랑이 없을 만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더!”와 같은 로맨틱한 답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지만 어느 것 하나도 정답이 아니었다.

그럼 과연 여자들이 생각하는 가장 모범적인 답은 무엇일까. 정답은 “내가 더 잘할게. 네가 그런 질문하게 해서 미안해…”였다. 이 정답에 남자들은 “뭐야 그게…” “어렵다…” “말도 안 돼…”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남자들 관점에서 살펴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답이며 여자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 의구심이 들게 할 만큼 황당한 답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이 정답에 마음을 홀라당 빼앗기며 “바로 그거야!”를 외친다.

사실 남자들은 여자 친구나 아내에게 “자기야 나 얼마나 사랑해?”라는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질문과 답을 보며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여자들은 왜 이런 질문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왜 동문서답을 자초하는 질문을 하는지다. 공교롭게도 이 두 의문은 여자들이 행복을 찾아가는 방식을 이해할 때 풀릴 수 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여자들은 사랑에 기초한 친밀한 관계를 통해 삶의 의미와 행복을 꿈꾼다’라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더 높고 좋은 자리를 탐하며 성공으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는 남자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래서 아내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남편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신경 쓰는지에 있다. 관계 속 사랑을 통한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것, 육아를 함께 하는 것, 친정에 잘하는 것,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챙겨주는 것, 선물을 사주는 것,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배려하는 것, 매너 있게 행동하는 것 등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런 행동들이 여자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러한 행동들이 남편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고 신경 쓰는지를 잘 알려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아내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남편의 말과 행동을 보며 자기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저울질한다. 때로는 기회를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남편의 마음을 확인하려 한다. 큰 의미 없는 남편의 말과 행동에 아내가 속상해하고 말과 마음을 닫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말과 행동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 말과 행동 속에 아내를 향한 배려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야 나 얼마나 사랑해?”라고 물으면 눈치 있는 남자들은 긴장하고 불안해한다. 정말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관심이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말과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나는 뭐야?” “나를 사랑하는 것은 맞아?” 남편을 보며 사랑에 대한 의심과 불신 그리고 불만이 생길 때마다 물을 것이다. “자기야 나 얼마나 사랑해?”라고. 그래서 정답이 “내가 더 잘할게. 네가 그런 질문하게 해서 미안해…”다.

김영훈 (연세대 교수·심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