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갈라치기의 끝은 어디인가

입력 2020-09-29 04:04

시행 두 달이 된 ‘임대차 3법’은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정책을 펼치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바로 ‘갈라치기(편가르기)’다. 임대료 상한, 무소불위의 계약갱신청구권으로 임차인(세입자)의 권익을 위해 임대인(집주인)의 희생과 선의를 사실상 강요한다. 철저히 ‘임차인=약자, 임대인=강자’라는 선입견을 토대로 삼고 있다.

하지만 임차인만 해도 여러 부류다. 서울 강남·서초구 전셋값은 평균 9억원을 넘었다. 10억원 안팎의 전세를 사는 사람은 웬만한 강북 및 지방의 임대인보다 부유하다. 이들이 보호해야 할 약자인가. 집을 전세 주고 전세 사는 임대인이자 임차인인 기자가 봐도 현실 모르는 정책에 쓴웃음이 나온다. “실수요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집 없는 45%와 핵심 지지세력 합쳐 60%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나머지 40%를 적대시하는 것”이라는 야당 인사의 분석이 명쾌하다는 생각이다.

대책의 일관성도 없다. 당초 정부는 “(임대차 3법에도) 집주인이 임대를 놓은 상황에서 실거주하려는 제3자(매수인)에게 파는 것은 문제없다”고 했다. 그런데 이후 “소유권 이전 전에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요구했으면 매수인은 실거주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경기도 용인의 오피스텔에 사는 결혼 2년 차 A씨는 지난달 인근 아파트를 전세 끼고 샀다. 하지만 만기에 맞춰 나가겠다던 세입자가 이달 초 계약갱신을 청구하면서 오도가도 못할 처지가 됐다. 정부 말을 믿고 집을 산 예비 서민 집주인이 무슨 죄인가.

부동산뿐 아니라 상당수 경제 정책이 ‘갈라치기’에 근거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본사와 하청, 정규직과 비정규직, 고용주와 고용인처럼 끝없이 나눈다. 이러다 보니 어제의 적폐가 오늘은 지원 대상이 되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속출한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할 때 많은 자영업자는 직원(알바)을 착취한 부류처럼 내몰렸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30년간 함께 일해온 직원을 눈물을 머금고 해고했다는 소식에 친여 인사는 “어떻게 30년이나 최저임금을 줬느냐”고 비꼬았다. 그런데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악화로 자영업자는 6개월간 임대료를 연체해도 쫓겨나지 않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수혜자가 됐다. 대신 건물주가 타깃이었다. 이들이 모두 강남의 으리으리한 빌딩 소유주는 아닐진대 다같이 어려운 처지에 ‘착한 임대인’되기를 종용받고 있다.

지난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직고용 사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밀어붙인 정부 정책의 맹점을 보여줬다. 그런데 정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인국공 사장이 해임됐다. 정부는 표면상 지난해 사장이 법인카드를 오남용했던 점을 들었지만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뜬금없는 해명이다. 인국공 사태에 따른 청년층 반발과 파장을 무마하려는 조처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갈라치기’ 대리인이 희생양이 된 셈이다.

정부가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개정할 때 이해당사자와 논의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필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당연함이 낯설어졌다. 정부·여당의 뿌리 깊은 ‘가해자 vs 피해자’의 이분법 논리가 소통 없는 일방 추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은 서로를 불신한 채 정부가 야기한 혼란의 뒤치다꺼리까지 하고 있다.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이 국가에 권리를 양도하는 것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에서 벗어나 개인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가 되레 만인끼리의 투쟁과 갈등을 부채질한다. 덧셈의 정책을 펴기가 그리 어려운가. 홉스는 권력자가 사회계약 의무를 위반하면 교체될 수 있다고 봤다. 갈라치기 정치를 멈추지 않으면 만인의 분노는 정권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고세욱 경제부장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