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방시대] 조업정지 기로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 공론화 절차 시급

입력 2020-09-28 20:29
영풍석포제련소의 120일 조업정지 처분을 둘러싼 환경부와 경북도의 갈등을 조정하고 있는 총리실 주재 행정협의조정위원회는 석포제련소가 획기적인 시설개선 방안을 제시하면 행정처분(조업정지) 수위 조정 가능성을 놓고 실무회의 논의를 거쳐 12월쯤에 조정안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석포제련소에 들어올 무방류설비 전경. 석포제련소 제공

조업정지의 기로에 선 영풍 석포제련소에 대한 환경 공론화 절차 수립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총리실은 지난 23일 영풍 석포제련소의 120일 조업정지 처분을 둘러싼 환경부와 경북도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행정협의조정위원회를 열었다. 조정위는 환경부와 경북도의 이견을 검토했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석포제련소의 법 위반 여부는 소송으로 다퉈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석포제련소가 획기적인 시설개선 방안을 제시하면 행정처분(조업정지) 수위 조정 가능성을 열어놓고 실무 논의를 거쳐 12월쯤에 조정안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은 경북도에 석포제련소 조업정지 처분을 과감하게 이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경북도는 “엄청난 산업, 경제적 파급효과와 지방소멸을 자극할 영향 등을 고려해 봤을 때 조업정지는 가혹하다”는 입장이다.

영풍측은 330억원 규모의 무방류시스템 구축을 완료하는 등 낙동강 수질오염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환경개선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실행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3월 석포제련소에 대한 점검과정에서 공정에 사용된 폐수가 흘러 빗물을 모으는 ‘이중옹벽조’에 흘러 들어간 사실을 적발했다. 이에 따라 폐수를 이중옹벽조로 흘려보내는 배관시설이 허가받지 않은 불법행위라고 판단하고 120일 조업정지를 처분했다. 영풍은 이미 2018년 2월 폐수정화용 미생물의 외부유출 논란으로 20일 조업정지를 당해 가중처벌된 것이다. 1차 조업정지는 현재 행정소송 중이다.

처분을 이행해야 하는 경북도는 배관시설 자체는 위법일 수 있지만, 폐수가 이중옹벽조에서 하천으로 한 방울도 유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업정지는 지나치다고 보고 있다.

석포제련소 제1공장 전경. 석포제련소 제공

석포제련소는 설립된 지 올해로 50주년을, 영풍그룹은 지난해 70주년을 맞았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10년 단위로 축하행사를 갖지만 영풍은 잇따른 송사와 환경 이슈 등으로 자중하는 가운데서 2019년을 보냈다. 영풍측은 시료의 수질검사 결과 불소의 농도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수치이고 시료 채취과정도 규정에 따라 적합하게 이뤄지지 않아 환경부의 조업정지 처분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영풍 관계자는 “제련소는 일관화학공정으로 설계돼 있어 공장을 멈추게 될 경우 발생할 기술적 문제도 심히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석포제련소의 1년 매출은 1조4000억원(2017년 기준)으로, 조업정지가 집행될 경우 지역총생산의 19.54%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도는 석포제련소 조업정지에 대해 공식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내심 그 결과를 걱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삼성, LG 등 주요 기업들의 시설이 조금씩 경북도를 떠나는 국면에서 영풍까지 처벌하게 되면 ‘후과(後果)’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석포제련소와 비슷한 시기에 포스코와 현대제철도 조업정지 처분을 당했다. 블리더를 통해 오염물질을 불법으로 배출한다고 지역 환경 운동연합이 주장했고, 경북도 전남도 충남도는 포스코와 현대제철 측에 각각 10일씩의 조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블리더는 용광로 내부의 압력이 상승하면 문을 열어 적정한 압력을 유지하는 밸브다.

석포제련소와 마찬가지로 철강 사업장도 1년 365일 쉬지 않고 조업하는 시설이다. 당시 철강업계는 선처를 호소하며 “조업을 계속하는 한 블리더 운용과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논란은 피해갈 수 없는 사안”임을 제기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환경부는 민관협의체 가동을 통해 처분 여부를 협의한다는 방식으로 두 기업에게 퇴로를 열어줬다. 당시 환경부 관계자는 “제철소들은 블리더를 개방할 때 날짜, 조치 사항 등을 지자체와 담당 환경청에 보고하게 된다”며 “석탄가루는 최소 3시간 이전에 투입을 중단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대안을 내놨다. 민관 협의체를 통해 사실상 오염물질 배출시설의 양성화 가능성을 개진한 셈이다.

현재 영풍 측은 1, 2차 조업정지 건 이외에도 환경부 측이 지난해 11월과 올해 발표한 ‘카드뮴 지하수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처럼 2차, 3차 처벌이 이뤄지는 것은 제철업계에 내려졌던 ‘관대한 처분’과는 너무 대조된다는 게 업계의 불만이다.

‘대외관리 역량이 꽤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SK하이닉스 역시 지역 환경단체로부터 상당한 반대에 직면해 있다. 지난 6월 충북 청주의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LNG 발전소(585㎿ 규모)가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면서 지역 환경운동연합의 큰 반대에 직면했다.

충북 청주는 오창 소각장, 용두리 쓰레기 산 논란 등으로 환경 문제가 매우 심각한 와중에 대기업의 에너지 공급용 LNG 시설까지 들어선다는 소식이 발표되자 지역 민심이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환경부 측은 “하이닉스로부터 질소산화물 배출로 인한 대기 악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감쇄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 내용은 친환경 보일러 사업, 전기버스, 대기오염 저감사업 같은 것들이다. 하이닉스 측은 이를 통해 지역 상생협의체를 가동해 풀어 가겠다는 방침이다. 남영진 건국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는 “이들 기업은 저마다 환경 논란의 원인과 진행 방향이 각기 다르지만 공론화 과정에서 감성적으로 분출된 여론이 과학적 판단을 흐리고 있다”며 “환경 보도 태도와 관련된 언론들의 입장이 아쉽다는 측면에서 제대로 된 환경 공론화 절차 수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봉화=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

[이제는 지방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