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앞둔 지난 25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중국군의 젠-20(J-20) 스텔스 전투기가 동중국해 연안에 있는 저장성 취저우 상공을 저공 비행하는 영상이 퍼졌다. 취저우는 미·중 갈등의 전장으로 떠오른 대만에서 불과 500㎞ 떨어진 곳이다.
대만은 발칵 뒤집혔다. 대만 언론들은 J-20이 취저우에 전진 배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최신 전략무기인 J-20은 취저우에서 대만 작전 지역까지 7~8분, 수도인 타이베이 상공까지 15분이면 도달한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하루 뒤 “J-20의 등장은 대만 분리주의자들과 미국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고 주장했다. 이어 “J-20은 유령 같은 침공 능력으로 대만 분리주의 지도자들에게 참수 공격을 가할 수 있다”며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J-20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중국군 동부 전구(戰區)는 지난 18일부터 대만해협 인근에서 해상 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J-20이 투입됐는지는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상태다.
미·중 갈등이 대만 문제로 번지면서 중국과 대만의 충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벌어진다면 그 시발점은 대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레드라인 무시하면 전쟁”
중국에 대만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 이익이다. 이 원칙은 미·중 관계의 기초이기도 하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고 대만과 단교했다.
다만 미국은 국내법으로 대만관계법을 제정해 대만 문제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미국이 대만과 통상·문화 등 분야에서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고 대만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골자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대만에 정부 고위 인사를 보내고 최신 무기 판매를 승인하는 등 대만을 국가처럼 대우하며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의 독립 시도에 무력 대응할 수 있도록 법률에 명시해 놨다. 2005년 제정된 중국의 반분열국가법 8조는 대만 분리주의 세력이 대만 분리를 야기하는 행동을 하거나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또 평화통일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비평화적 방식’과 다른 필요 조치로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을 수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세 가지가 대만 문제를 대하는 중국의 마지노선이다.
최근 중국 관영 매체들은 대만 문제를 언급하면서 전쟁이란 단어를 심심찮게 쓰고 있다. 중국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유명한 후시진 글로벌타임스 편집장은 홈페이지에 올린 영상에서 “미국과 대만이 중국의 레드라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전쟁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입장에서 대만 문제는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많은 이슈다. 입법 활동과 정부 간 교류, 무기 판매, 군사자산 활용 등이 대표적인 수단이다. 대만 독립 성향의 현 차이잉원 총통은 미국의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미국은 대중 압박 수단으로 대만과 밀착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해 6월 미 국방부가 인도태평양전략보고서에서 대만을 ‘국가(country)’로 언급한 건 상징적인 사건이다. 여기에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장관이 지난 7월 대만을 방문한 데 이어 키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도 지난 주 대만을 찾았다.
에이자 장관은 미·중 수교 이후 대만을 찾은 미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다. 대만 방문 국무부 관료 중 가장 급이 높은 크라크 차관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견제용으로 추진 중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의 입안자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보란 듯이 대만 독립론자였던 고(故) 리덩후이 전 총통을 조문하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미국 일각에선 최근 대만에 지상군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국과 대만의 군사 협력이 강화되고 있지만 군대 주둔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중국의 군사 평론가 쑹중핑은 “미·중 관계를 1979년 수교 이전의 대립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런 주장에 대해선 대만 내에서도 논쟁이 있고 집권당이나 야당 모두 반대 입장이라고 글로벌타임스는 전했다.
스파이 지목 ‘뉴욕 中총영사관' 또 다른 뇌관
중국은 미국의 중국 공관 추가 폐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중국 당국이 눈여겨보고 있는 인물은 반중 전선 선봉에 서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주 위스콘신주 연설에서 뉴욕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중국 스파이 활동의 거점으로 지목했는데, 중국은 이를 ‘외교 충돌을 불러일으키는 최신 위협’으로 규정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미국이 뉴욕 주재 중국 총영사관의 정상 운영을 막는다면 중국의 동급 미국 총영사관도 반드시 대등한 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미국이 중국 외교관을 겨냥하면 반드시 같은 수의 미국 외교관을 대등하게 상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한 달 남짓 남은 미 대선용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눈에는 눈’ 식의 보복 조치를 거듭 다짐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미·중이 서로 공관을 폐쇄한, 외교상 전례를 찾기 힘든 사태가 되풀이될 가능성도 있다. 당시 미국은 불법 정보 수집을 이유로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했고 중국은 청두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 폐쇄로 맞대응했다. 이후 폼페이오 장관은 미·중 수교의 토대를 닦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도서관 연설에서 “중국 공산당을 불신하고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중 포용 정책은 끝났다는 선언으로 해석됐다.
[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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