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앞서 의견을 모았던 대북규탄결의안 채택과 긴급현안질의가 사실상 무산됐다. 서해상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한 국회 대북규탄결의는 당초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했고, 국민의힘이 긴급현안질의 실시를 조건으로 수용했었다. 그러나 지난 25일 북한의 공식 사과가 나온 뒤 기류가 바뀐 민주당은 규탄결의안을 먼저 채택하고 현안질의는 다음에 얘기하자고 입장을 바꿨다. 국민의힘은 이를 거부하고 27일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나섰다.
국회 본회의장을 정쟁의 장으로 만드는 게 적절치 않으니 현안질의를 다음에 하자는 여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번 우리 국민 피살 사건의 경위와 정부 대응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많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답변할 필요가 있다. 여당이 정부의 사건 대응을 놓고 더 이상 비난과 추궁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현안질의를 거부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아니, 북한의 사과 몇 마디에 규탄결의를 할 마음 자체가 사라져서 이렇게 미온적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여당은 ‘북한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사과했으니 다 된 것 아니냐’며 이 정도 선에서 넘어가기를 바라는 인상이 역력하다. 민주당 의원과 유관부처 장관들이 북한의 사과가 이례적이고 진솔했다고 강조하고, 미안하다는 표현을 두 차례 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서 그렇게 느껴진다. 북한의 사과에 감격해 하는 듯한 언행은 정부·여당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특히 북한 입장에 경도된 여권 인사들의 발언은 어처구니가 없다. 25일 유튜브 방송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계몽 군주 같다”고 했고,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통 큰 측면”이라고 말했다. 정 수석부의장은 이번 사건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생각하자고도 했다. 우리 국민이 참극을 당했는데 북한 최고지도자가 사과했다고 칭찬하면서 이번 사건이 남북관계에 오히려 복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이런 잘못된 생각이 여권의 전반적인 인식이 아니기를 바란다.
[사설] 김정은 한마디에 다 됐다는 여당
입력 2020-09-28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