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태국 방콕에서 폭우와 강풍이 휩쓸고 간 처참한 수해 현장을 마주한 적이 있다. 당시 현지에선 “방콕이 몇십 년 후 물에 완전히 잠길 것”이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정부를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실제 당시 홍수피해의 명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못했고, 이후 추진한 약 12조원 규모의 통합물관리 정책의 성과도 확인되지 않았다.
올여름 우리나라도 역대 최장기간 장마(54일간)로 인한 홍수피해를 겪었다. 일부 지역에선 댐 방류량 조절 실패가 수해를 키웠다고 항의했다. 이에 환경부는 ‘댐관리 조사위원회’를 꾸려 댐 운영 적정성 조사에 착수했다. 귀책 사유가 발견되면 형사처벌 등 법적 조치를 한다고도 했다. 대상은 환경부 소속·산하기관인 홍수통제소와 한국수자원공사다.
문제는 이번 조사가 ‘댐관리 운영의 적정성’에 국한돼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섬진강·낙동강 제방이 무너지고 하천이 범람한 원인은 ‘댐관리 운영상 문제’ O·X 퀴즈로 끝날 게 불 보듯 뻔하다. 자의든 타의든 무너진 제방 관리 주체인 국토교통부는 ‘강 건너 불구경’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대한하천학회장인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제방이 붕괴하고 홍수피해를 키운 주된 요인은 파이핑 현상(댐 하부나 측부에 구멍이 생겨 물이 흘러나가는 현상) 때문”이라고 했다. 국토부의 하천 시설물 정비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수위 조절과 수문 개방 권한은 환경부와 홍수통제소·수자원공사에 있지만 물관리 시설별 관리 주체는 국토부와 농어촌공사, 한국수력원자력, 행정안전부 등이 얽혀 있다. 대규모 홍수피해 원인을 ‘댐관리 운영의 적정성’에서만 찾겠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인 이유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통합물관리 정책도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 자명하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의원의 주장처럼 총리실 주도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조사 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렵게 시작한 이번 조사가 용두사미가 되지 않길 바란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