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항문 출혈 암인 경우는 100명 중 4~5명… 대부분 치핵·치열

입력 2020-09-29 04:01
대장항문학회, 537명 분석 결과
검붉고 갈색변이 한달 이상 지속땐 대장암 가능성 높아 전문의 찾아야
암 진단자 41% “출혈량 묻는 정도”

사진=게티이미지

“변기 물이 빨개요.” “휴지에 선홍색 피가 묻어납니다.” “항문이 아프고 뜨거워요.” “딱딱한 변에 검붉은 피가 약간 섞여 나와요.”

포털사이트 지식인 코너에 많이 올라와 있는 ‘항문 출혈’ 관련 글들이다. 대부분 화장실에서 즐겁지 않은 경험을 하고 화들짝 놀라 주변의 조언을 구하고 있다. 궁극적으론 대장암 같은 큰 병이 아닐까 염려한다. 하지만 이런 항문 출혈 경험자 중에 실제 암이거나 암 위험이 높은 경우는 100명 가운데 4~5명 정도로 지나치게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대한대장항문학회가 지난 4~6월 항문 출혈로 전국 24개 대학 및 종합병원, 전문병원을 찾은 10~89세 537명을 분석해 얻은 결론이다. 학회가 이들 가운데 암이 의심돼 전원된 70명을 제외한 46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중복 응답) 암이나 암이 될 가능성이 큰 ‘진행성 선종(용종)’을 진단받은 경우는 전체의 4.7%(22명)에 그쳤다. 대부분은 치핵(67%), 치열(27.4%) 같은 양성 항문질환이 출혈의 원인이었다. 항문 주위 궤양 또는 치루(2.4%), 기타 양성 항문질환(2.6%), 염증성 장질환(1.9%), 기타 양성 결·직장질환(1.5%), 수술 또는 시술 후 합병증(0.2%) 등이 뒤를 이었다.


학회는 9월 ‘대장앎의 달’ 캠페인에 맞춰 이 같은 조사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학회는 “대장암과 대장·항문의 여러 양성 질환에 의한 출혈 양상은 조금 차이가 있는 만큼 주의깊게 살펴야 하고 정확한 감별을 위해선 대장항문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사기간 내 대장암 등 최종 암을 진단받은 사람은 모두 65명이었다. 암이 의심돼 전원된 환자 70명 중에 최종 암 판정자가 상당수 나왔다. 암 진단자들의 평균 나이는 66.6세로 전체 항문 출혈 환자(49.1세)보다 높았고 남성(40명)이 여성보다 많았다.


학회는 암 진단군과 전체 항문 출혈 환자군의 양상을 비교했다. 전체 환자의 항문 출혈 시작 시기는 일주일 내(23%), 일주일~한 달 내(23%), 한 달~1년 내(28%), 1년~수년 내(25%)가 고르게 분포됐다. 반면 암 진단군은 한 달~1년 내가 61%, 1년~수년 내가 23%를 차지해 항문 출혈이 상대적으로 오래된 경우가 많았다.

항문 출혈 빈도를 보면 전체 환자의 63%가 ‘매일 또는 자주 출혈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암 진단자들은 절반 가까이(49%)가 ‘1주일에 수차례’라고 했다. 매일(20%), 한 달에 수차례(18%)가 뒤를 이었다.

출혈의 색깔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전체 환자의 92%는 선홍색, 7%가 검붉은색~갈색이라고 답했다. 반면 암 진단자는 선홍색(71%) 비율은 조금 낮고 검붉은색~갈색(28%), 흑색변(1%)이라는 답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항문 출혈량은 전체 환자의 경우 피가 변기에 떨어진다거나 물총처럼 뿜을 정도로 양이 많다는 응답이 39%였다. 그러나 암 진단자는 출혈량은 많지 않고 대변 겉에 묻는 정도(41%), 휴지에 묻는 정도(25%), 변과 섞여나옴(14%) 등의 응답률이 높았다. 출혈 동반 증상(복수 응답)의 경우 전체 환자는 항문통증이 있다(42%)거나 다른 증상 없다(31%)는 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암 진단자 역시 동반 증상 없음(38.5%)이 가장 많았으나 잔변감(29.2%), 변비 설사 등 배변습관 변화(24.6%), 체중감소(23.1%) 등을 동반한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항문 출혈 환자의 최종 진단 암 종류(중복)는 직장암이 64.6%로 가장 많았고 좌측 결장암(33.8%), 우측 결장암(1.5%), 항문암(1.5%) 순이었다.

백세진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28일 “항문 출혈 경험자 중에 대장암을 진단받은 이들은 출혈이 한 달 이상 지속되거나 상대적으로 검붉거나 갈색, 흑색변이 많았다. 또 출혈량은 오히려 많지 않고 대변 겉에 묻거나 섞여 나오며 체중감소나 배변습관 변화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런 특징을 갖는 항문 출혈을 경험했다면 빨리 병원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증상이 모호한 경우가 많아서 이런 특징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괜찮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항문 출혈로 진료받은 이들 중에 대장암 진단 사례는 실제로 매우 적으니 항문 출혈이 있다고 해서 과도하게 불안해하거나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학회에 따르면 항문 출혈은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증상이다. 대부분은 치질의 일종인 치핵, 치열 등 양성 항문질환 때문에 생긴다. 치열의 경우 대부분 변비로 인해 오래되고 딱딱한 변이 나오면서 항문관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생기는데, 배변 시 날카로운 통증과 붉은 피가 비칠 수 있다. 소화기관에 만성 염증을 일으키는 염증성 장질환(크론병, 궤양성대장염)도 피 섞인 설사를 동반한다. 대장게실염이나 허혈성 결장염 등 양성 대장질환도 출혈이 따를 수 있다.

위장 속 출혈은 위치에 따라 양상이 좀 다르다. 출혈이 결장의 시작 부위나 상부 위장관에서 있으면 8시간 이상 산화돼 까많게 변하기 때문에 변의 색이 자장면처럼 변한다. 하지만 항문 근처 가까운 곳에서 출혈이 생기면 선홍색을 띤다. 자주색 혈흔이 변을 본 후 휴지에 묻기도 한다.

우측 결장암의 경우 자각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오래 걸리므로 지속적인 출혈로 인해 빈혈을 일으켜 어지럽다거나 숨이 찬다든지 하는 소화기 증상과 무관한 증상이 나타난다. 암 덩어리가 커져서 변의 통과가 문제되는 경우 복통을 일으키기도 한다. 좌측 결장암이나 직장암의 경우에는 변비가 생긴다든지, 변비와 설사가 반복된다든지, 변을 본 후 덜 본 느낌이 나는 등 배변습관의 변화 증상이 따른다.

대장항문학회 이사장인 이석환 강동경희대병원 교수는 “항문 출혈은 대장암의 일반 증상은 아니다”면서도 “항문 출혈이 한 달 이상 지속되거나 50세 이상인 경우라면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장암은 발생 위치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일단 증상이 있으면 암이 이미 진행된 경우가 많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병변을 찾아 예방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강조했다. 50세 이상인 모든 성인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5년에 한 번씩 대장내시경 검사가 권고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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