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후원에는 마주 보고 있는 두 곳의 휴게시설이 있다. 한 곳은 긴 벤치를 한 줄로 늘어놓고 비가림 시설을 했는데 할아버지들이 이용했다. 맞은편에는 정자와 몇 개의 나무 의자가 있어 할머니들이 이용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노인들이 남녀별로 휴식공간을 나누어 사용했다.
그날은 낯선 남자 노인이 할머니들의 휴식공간에 앉아 있었던가 보다. 나중에 온 할머니가 역정을 내며 왜 여자들이 노는 곳으로 왔느냐며 가라고 했다. 그러자 그 노인이 “정자에 여자용과 남자용이 따로 있어. 여기가 공중변소인가”라고 한마디했다. 할머니도 “저쪽에 남자들이 노는 데가 있잖아요. 왜 여기에 앉으려고 해요”라고 맞받았다. 서로 다투는 사이 다른 할머니들이 모여들었다. 노인이 낯선 분이라는 것을 알고 “노인회 회장님께 말해야겠어요. 우리가 저리로 가요”라고 해서 갑자기 자리가 바뀌게 됐다. 혼자 남은 노인은 먼 곳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 사이 다른 할머니 한 분이 와서 왜 여기로 자리를 옮겼느냐고 했다. 누군가 건너편 정자를 가리켰다. 늦게 온 할머니는 비닐봉투에 든 건강음료를 꺼내 하나씩 돌렸다. 남은 것을 들고 노인이 있는 정자로 다가갔다. 할머니가 “어디서 많이 뵌 분 같아요”라며 음료를 내밀었다. 그제야 노인은 마스크를 반쯤 내리면서 말했다. “글쎄요. 누구신지.” “맞아. 봉천동 세탁소 아저씨 맞지요.” 두 사람은 서로 반기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노인은 아내가 암으로 죽어 살던 집을 처분했고, 미국에 있는 아들이 가끔 전화하지만 혼자 죽으려고 이 아파트로 이사 왔다고 했다. 노인정이 있다고 해서 처음 나왔는데 여기가 여사님들이 노는 곳인 줄 몰랐다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고 잠시 후 시선이 노인 쪽으로 쏠렸다. 노인은 손을 들어 거수경례를 하면서 머리를 숙였다. 할머니들도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며 환하게 웃었다.
오병훈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