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가 실물 음반 시장의 대세가 됐다. 미국에서는 34년 만에 LP 매출이 CD 매출을 앞질렀다. 지난 10일 미국음반산업협회가 발표한 ‘2020년 상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LP 판매액은 2억 2310만 달러로, 1억 2990만 달러를 기록한 CD 판매액의 약 두 배에 달했다. 또한 올해 전반기 LP 매출액은 4% 증가한 반면, CD 매출액은 48%나 급감했다. 지난해 미국음반산업협회는 LP가 조만간 CD 매출액을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는데, 딱 1년 만에 현실로 나타났다.
다만 이 집계가 판매량의 추월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LP는 대부분 한정판으로 제작돼 CD보다 보통 두세 배 더 비싼 값에 판매된다. 어떤 음반은 CD 금액의 열 배도 훌쩍 넘는다. CD 판매량이 급감했지만 LP의 가격이 기본적으로 높다 보니 판매액에서 CD에 비해선 유리한 상황이다. CD가 여전히 실물 음반 판매량 1위라곤 하지만 LP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일도 시간문제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음악 시장의 주도권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거머쥔 지 오래다. 충성심 강한 팬들이 같은 음반을 몇 장씩 사 주는 아이돌 가수가 아니면 음반 판매로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연유로 CD 제작에 필요성을 못 느끼는 뮤지션이 느는 추세다. 대신 열혈 음악 팬이나 음반 수집가들을 겨냥한 희소성 있는 상품으로 LP를 선보이는 경우가 꾸준히 증가하는 중이다. 1990년대 들어서 CD에 맥없이 밀려났던 LP가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LP 소생 흐름이 조성된 데에는 복고 열풍도 한몫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큰 인기를 얻고, 옛날 가수들과 히트곡들을 재조명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잇따라 만들어지면서 아날로그 시대를 상징하는 LP가 덩달아 부상하게 됐다. 그 시절을 경험한 중년들은 추억을 곱씹는 매개로 LP를 찾고, 젊은 세대는 자신이 접해 보지 못한 매체라 관심을 기울인다.
점점 늘어나는 LP 전문 음반 매장과 LP바도 LP 확산의 조용한 지원군이다. 이런 가게들은 좋은 오디오 시스템과 근사한 분위기 덕에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LP판이 빼곡히 진열된 사진을 보면서 턴테이블이 없음에도 호기심이나 인테리어 목적으로 LP를 구입하는 이도 제법 많다.
특히 요즘에는 턴테이블이 없어도 음악 감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근래 제작되는 LP는 대개 인터넷에서 음원을 내려받을 수 있는 코드를 제공하고 있다. 쉬운 청취와 시각적인 부분을 만족하니 LP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지난 21일 LP로 다시 돌아온 이소라의 6집 ‘눈썹달’은 13만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예약 판매를 개시한 지 1분 만에 한정판 3000장이 모두 팔려 나갔다. ‘눈썹달’에 앞서 LP로 출시된 듀스 베스트 앨범, 백예린 1집, 신승훈 ‘마이 페르소나스’ 등도 발매 직후 모두 매진됐다. 이러한 일련의 정황은 음반 시장에서 LP의 성장세를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다시금 LP가 번영의 길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