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 침묵의 시간 해명해야

입력 2020-09-26 04:01
우리 국민이 북한에 의해 처참하게 사살되는 동안 청와대와 군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북한이 우리 민간인을 바다 위에 붙잡아뒀다는 사실을 군이 인지한 시점부터 피살되기까지 6시간, 피살 후 국민에게 알려지기까지 긴 시간 동안 청와대는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해명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이 사건과 관련해 신속히 유감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우리 정부와 청와대의 움직임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설명과 규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 측이 밝힌 사건 경위에 대한 검증도 이뤄져야 한다.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1등 항해사 이모씨가 실종된 것은 지난 21일 오전 11시30분이다. 북한이 구명조끼를 입은 그를 발견한 정황을 우리 군이 포착한 것은 22일 15시30분. 문재인 대통령에게 첫 서면 보고가 올라간 것은 18시36분이다. 21시40분 북한 단속정은 이씨를 총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탈진 상태로 북한군에 발견돼 6시간 넘게 바다에 있었던 우리 국민을 살릴 기회는 몇 차례 있었다. 군이 대북 감청으로 사살 지시를 파악한 직후 신속한 구출 노력이 이뤄져야 했다. 대통령에게 첫 서면 보고가 이뤄진 이후에도 정부와 청와대는 대북 라인을 통한 송환 요청 등을 하지 않았다. 정부의 대응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23일 새벽 1시 청와대에서 심야 안보관계장관 회의가 개최됐으나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자국민이 사살된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대통령 보고가 이뤄지고,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는 게 상식적이다. 미리 녹화해둔 대통령의 ‘북과 종전선언’ 유엔 화상 기조연설은 이날 새벽 1시26분에 나갔다. 이씨 피살 사실을 군이 국민에게 공식 발표한 것은 24일 오전 11시였다. 군과 청와대가 이씨의 사건을 처음 접한 이후 오랫동안 침묵한 이유에 의문이 생긴다.

문 대통령은 25일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북한의 만행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평화라는 단어만 6번 말하고 북한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아 이번 사건의 파장을 애써 축소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야권은 청와대가 북한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번 사건이 “세월호 7시간과 다르지 않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청와대와 군의 지시가 기민하고 정확했다면 이씨를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청와대는 침묵의 시간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만한 해명을 반드시 내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