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국방 포럼] 정부 “방산업체, 군수요 의존 말고 선투자를”… 업계 “개발 실패 리스크 보완을”

입력 2020-09-24 19:42 수정 2020-09-24 21:15
나상웅 한국방위산업진흥회 부회장이 24일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디지털 강군, 스마트국방 포럼’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정부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신무기 개발로 국방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방산업체들의 적극적인 투자와 독자적인 개발이 추진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군의 수요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방산업체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군이 매력을 느낄 만한 무기를 개발하고 이것이 군의 수요로 이어질 경우 시너지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업계에선 개발 실패에 따른 경제적 리스크를 정부에서 보완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개발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가 정착돼야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조현기 방위사업청 기술정책과장은 24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 5층 대회의실에서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디지털 강군, 스마트국방 포럼’을 주제로 한 조찬 포럼에서 “군의 수요를 기반으로 방위산업을 이끄는 구조가 계속되면 (산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에 계속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조 과장은 “기업이 선투자를 통해 군이 매력을 느낄 만한 무기를 개발하면 이것이 수요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큰 플랫폼은 국가 주도의 ‘톱다운’ 형태로 가야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이 적용되는 시대에선 기업의 투자로 개발된 신무기가 수요 창출로 이어지는 산업 구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문상균 한화디펜스 전무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군 수요 없이) 투자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도 이를 군에서 도입하지 않거나 수출 판로마저 막힐 경우 개발에 투입된 비용을 모두 잃게 된다는 지적이다.

문 전무는 “미국 육군처럼 군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게 (업계 입장에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군에서 확실한 국방력 강화 목표나 대략적인 증강안을 제시해주면 이에 맞춰 업체들이 개발에 뛰어들고 투자도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문 전무는 “군과 산·학·연이 함께 연구해 이런 방향성을 정해주면 기업들이 과감히 투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류태규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과학기술아카데미 원장도 투자 리스크를 낮출 수 있는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무인기 실험을 하다 추락했는데 이를 갖고 연구원에 60억원을 보상하라고 했다”며 “그 이후로 연구·개발 분위기가 위축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류 원장은 실패해도 배상 등의 책임을 묻지 않는 ‘성실수행인정제도’를 언급하며 “(개발자들에게) 마음 놓고 (연구)하라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는 기존의 탱크나 대포, 소총처럼 20~30년 무기를 쓰는 게 아니라 요구 사항에 따라 그때그때 무기의 성능이 바뀌어야 하는데 지금은 진부한 평가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변화하는 무기체계 개발을 위해 제도도 이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무기 수명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문 전무는 “K-21 보병전투장갑차의 수명이 20년인데 이 수명을 다 쓰고 다음 장갑차를 개발한다면 새로운 기술을 신속하게 접목하기 어렵고 업계 선두주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무기의 수명 주기에 도달하지 않아도 조기에 퇴역시키는 일본처럼 수명 주기를 정책적으로 유연하게 적용해 ‘기계적 수명 주기’가 아닌 ‘정책적 수명 주기’로 판단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국방부는 신무기 개발·평가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김경환 국방부 공통전력계획평가과장은 “효율성과 전문성을 모두 살릴 수 있는 방위산업 혁신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혁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여기에서 경직된 (개발 및 평가) 체계를 단순화하는 등 여러 제도를 발굴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방위산업발전법이 그 산물이라고 김 과장은 평가했다. 이 법은 5년마다 방위산업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방안, 수출 기업에 국방과학 기술을 이전할 수 있는 방안, 무기 구매국에 대한 지원 방안 등을 담고 있다.

김 과장은 “방산업체 최고경영자(CEO)들과 주기적인 간담회를 실시하며 소통을 이어나가고 우리 무기의 수출을 위한 국제 협력도 관심을 갖고 추진 중”이라며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미래 전력을 건설하는 핵심 산업인 만큼 관련 기관과 소통하고 협업을 통해 제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 사회를 맡은 최현수 전 국방부 대변인은 시험평가 유연화와 관련해 “무기라는 게 워낙 복잡해서 처음 나올 때부터 완벽할 수 없다는 국민적 인식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 부회장은 시험평가 기준에서 80~90%만 충족하면 일단 전력화한 뒤 미충족한 부분(10~20%)은 성능개량을 통해 개발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