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우리 국민이 지난 22일 북측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고 시신이 해상에서 불에 태워졌다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국경을 넘어온 비무장 민간인을 죽여 시신을 훼손한 것은 국제법 위반을 넘어 문명국가라면 도저히 해선 안 될 극악무도한 짓이다. 이번 일은 2008년 금강산 관광 도중 피살된 ‘박왕자씨 사건’보다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북측은 당시 일은 우발적으로 발생했다고 둘러댔지만, 이번에는 피격 대상이 민간인인 것을 분명히 확인한 상태에서 고의로 사살하고 시신까지 불태웠기 때문이다. 설사 코로나19 전파 가능성 때문에 그랬다고 변명할지라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고, 남측을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다. 게다가 이 일이 공식 지휘체계를 거쳐 벌어진 것으로 파악돼 북한 당국이 개입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면 남북 관계의 틀을 총체적으로 흔드는 중대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국민이 총격으로 사망하고 시신까지 훼손된 중대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청와대와 국방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군은 민간인이 실종된 이튿날인 22일 오후 3시30분 북한군에 의해 발견된 것을 식별했다. 6시간쯤 뒤인 9시40분에 시신이 불태워지는 불빛도 확인했다. 그런데도 그 사이에 북측에 우리 국민임을 알리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청와대는 23일 오전 1시에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음에도 피격 사실은 24일 오전 10시40분에야 군 브리핑을 통해 뒤늦게 공개했다.
무엇보다 현 정부가 가장 공을 들여온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이 우리 국민의 피격으로 귀결됐다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남측 재산인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이 북한에 의해 폭파된 지 3개월여 만에 또 다시 이런 만행을 저지른 북한과 앞으로 어떤 대화가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전 1시26분에 유엔총회 화상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 종전선언 필요성과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방역 협력을 제안했는데 얼마나 공허한 제안이었던 셈인가. 정부는 북측의 잘못된 행동은 일절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번 일과 관련해 북측의 책임 있는 당국자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없는 한 그 어떤 대북 협력도 유예하는 게 옳다. 국민의 안전과 재산 보호가 전제되지 않는 협력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저자세 대북정책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 될 것이다.
[사설] 용납 못할 北 만행, 공허한 대북정책이 낳은 민간인 피격
입력 2020-09-25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