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품은 아이들 <33>] 네 살 무렵 시작된 아빠의 폭력, 마음 닫고 말 잊어

입력 2020-09-25 00:02
지적장애를 가진 영광(가명)이가 지난 6월 서울의 한 학교에서 언어학습을 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올해 열 살인 영광(가명·지적장애)이의 말을 알아듣는 건 엄마와 누나들뿐이다.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발음이 불분명한 단어 몇 개나 지시어로만 의사표현을 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만 해도 아무 문제 없던 영광이에게 변화가 생긴 건 네 살이던 2014년, 가정폭력이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면서부터였다.

“목을 조르기도 하고 손닿는 곳마다 때렸어요. 이웃집에 애들 울음소리랑 다투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지요.”

엄마 김혜영(가명·40)씨를 향한 아빠의 폭력은 세 자녀에게도 손을 뻗쳤다. 아빠가 주먹을 휘둘러 몇 차례 신고도 해봤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폭력은 4년 넘게 이어졌고 가족들의 몸과 마음엔 시퍼런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 죽으려고 했어요. 그러다 아이들 생각에 정신을 차렸죠. 무작정 애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고, 지인에게 도움을 청해 남편으로부터 도망쳤지요.”

폭력의 굴레에선 벗어났지만, 상처는 크게 남았다. 영광이의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더니 결국 ‘지적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충격과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에서 벗어날 겨를도 없었다. 남편은 김씨의 지인에게 매일같이 “아내와 아이들 어디 있냐”고 추궁했다.

김씨는 남편의 추적을 피해 다니며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백방으로 노력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한 남편은 4년 형을 받고 수감 중이다. 남편의 출소 후가 두렵지만 김씨와 가족들은 신앙을 붙들며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일상이 피신이고 거처가 바뀌다 보니 제대로 교회를 가지 못했어요. 아이들이 교회를 가자고 해서 알아보다가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했죠. 친하게 교제하는 성도들이 ‘폭력을 겪은 아이들 같지 않고, 밝아 보인다’고 얘기해줄 때마다 큰 힘이 됩니다. 아이들은 집에서도 찬양을 틀어달라고 해요.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를 제일 좋아해요. 처음엔 하나님 원망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우리 식구 곁에 늘 함께하고 계심을 느껴요.”

상처를 딛고 새출발을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영광이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바우처로 주 1회 심리운동치료와 놀이치료를 받고 있다. 중학교 입학이 얼마 남지 않아 언어치료도 시급하지만 형편상 꿈도 꿀 수 없다. 누나 지혜(가명)도 심리치료 지원이 4번밖에 남지 않아 막막한 상황이다. 7년 전 허리가 주저앉아 척추 수술을 받았던 김씨는 이제는 다리까지 통증이 전이된 상태다.

영광이네 수입은 한부모 양육수당, 장애수당 등 110만원이 전부다. 생활비를 감당하려고 썼던 카드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매월 40만원씩 갚아야 한다. 변변치 못한 반찬으로 아이들의 끼니를 챙겨줄 때면 김씨의 눈가엔 눈물이 고인다.

“바라는 것은 늘 저보다 아이들의 건강이죠. 하나님께서 세 아이를 살펴주시고 입술과 마음을 열어주셔서 얼른 말을 하게 되기를, 지금처럼 우리 가정의 안정과 평화를 지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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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