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정착을 위한 시계의 분침, 초침이라도 움직이게 하려고 한 것이다.”
수면 아래에 있던 ‘종전선언’을 다시 꺼내든 문재인(사진)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대한 청와대 설명이다. 당장 실현 가능성이 작더라도 종전선언이야말로 현재의 교착 상황을 뚫을 수 있는 유효한 정치적 수단이라는 판단이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이라는 문구를 연설문에 넣기까지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오랜 토론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3일 기자들을 만나 “오늘 (종전선언) 메시지를 냈다고 해서 당장 현실화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인내심을 갖고 내일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 지도자의 연설은 의지와 신념의 표현”이라며 “이런 취지에서 평화에 대한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는 종전선언을 통해 항구적 평화의 길로 들어서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통로’인 종전선언은 남북이 2018년 4·27 판문점 정상회담 등을 통해 이미 합의한 사안이다. 하지만 현실화하지 못했다. 지난해 ‘하노이 노딜’ 이후에는 공식석상에서도 찾기 어려운 말이 됐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며 종전선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을 향해 남북이 뭘 하자는 제안이라기보다는 국제사회에 대한 지지 호소다. 북한은 지금 움직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이) 진행되도록 국제사회가 지원해 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제사회의 협력 중요성이 확인된 만큼,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도 국제사회의 지지가 힘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문 대통령은 24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첫 정상통화를 하기로 논의 중인데, 성사된다면 이 자리에서도 종전선언이 언급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연설문에 종전선언을 넣기까지 서훈 실장 등 참모들과 여러 차례 난상토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안보실장과 오랜 토론 끝에 종전선언을 넣기로 결정한 것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제안을 한 것”이라며 “종전선언에 속도를 내기 위해 유엔과 국제사회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했다. 방역 물품에 한해 한시적 대북 제재 해제 등이 거론된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종전선언이 문재인정부가 갖고 있는 카드 중 다른 카드보다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대선 정국인 미국이 종전선언에 신경 쓸 확률은 낮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사진) 미국 국무부 장관이 다음달 초 방한할 것으로 알려져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미 대선을 한달 앞두고 이뤄지는 깜짝 방문이다. 한·미 외교 당국은 북한 비핵화 등 주요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방한 직후 스가 요시히데 신임 일본 총리를 예방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 환담에서 “평화의 시대는 일직선으로 곧장 나 있는 길이 아니다. 진전이 있다가 때로는 후퇴도 있고, 때로는 멈추기도 하고, 때로는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며 “이럴 때 국방력은 전쟁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임성수 손재호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