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뒷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시인 기형도의 유고 시집 ‘입속의 검은 잎’에 실린 시 ‘우리 동네 목사님’ 일부다. 1980년대 중반, ‘초짜 기독교인’이자 영문학을 전공하던 한 대학생은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시구에 충격을 받는다. 신앙의 본질을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 데 압도돼서다.
최근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예책)를 펴낸 이정일(57) 목사 이야기다. ‘평생 문학을 공부했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 신학을 공부했지만, 스스로 문학과 인생 속에 파묻힌 하나님의 이야기를 캐내는 광부라고 생각한다’고 스스로를 정의한 그를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 목사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뉴욕주립대 영문과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다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남침례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아 2013년 귀국했다. 현재는 신한대 교양학부 외래강사이자 경기도 연천의 포병대대 교회 군선교사로 사역한다.
책에는 그가 3년간 동서고금의 문학에서 발견한 기독교적 통찰이 빼곡하다. 성경보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주제 사라마구, 김훈과 김영하 등의 작품 내용이 더 많이 등장한다. 풍부한 인용 덕에 책 여러 권을 읽은 듯한 느낌이다.
그간 학술 논문을 주로 써온 그가 기독교와 문학을 엮어낸 책을 쓴 건 ‘기독교 신앙에 일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다. 2015년 ‘대형 마트에 밀려 동네 문구점이 사라진다’는 기사를 접한 게 계기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골목상권 문구점이 외면받는 현실을 보며 그는 성경 속 사회적 약자인 ‘사마리아 여인’을 떠올렸다. “문구점 하나 닫는 게 끝이 아니에요. 우리 소비로 이웃의 생존이 위협받는 거죠. 기독교인이라면 일상의 사건을 보더라도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고, 소외된 이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정신없이 흐르는 일상 가운데 삶을 통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목사는 문학이 이를 도와준다고 믿는다. 문학은 익숙해진 일상을 낯설게 보도록 돕는다.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의 시어 “누군가의 먹구름에 무지개가 돼라”는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문장,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는 결국 무엇이 남을까”를 읽다 보면 문득 ‘우리 시대 김지영에게 더 나은 기회와 발언권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 온다.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를 향한 그의 ‘문학 효용론’은 책 곳곳에서 발견된다. ‘문학은 삶의 통찰, 유연한 사고, 도덕적 판단 능력, 공감 능력, 서사화 능력 같은 삶의 기술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은 문학을 통해서도 당신의 놀라운 계획을 들려주신다’…. 문학의 필요성을 누차 강조하는 건 ‘성경에 갇혀 세상에 진리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신앙인이 한국교회에 적지 않다고 판단해서다.
“문학이란 연결고리로 진리를 말하면 자연스레 설명할 수 있는데, 적지 않은 목회자가 성경 말씀을 일방적으로 선포하며 진리를 전합니다. 정답을 모르는 게 아니라 정답대로 사는 게 힘들어 넘어지는 게 인간입니다. 성경에 갇힌 이야기를 일상으로 풀어야 합니다.”
이 목사는 앞으로도 기독교 진리를 문학으로 설명하는 일에 매진할 계획이다. “많은 이들이 기독교를 미워하는 건 역설적으로 교회에서 희망을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희망을 문학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신앙인에겐 문학으로 유연한 사고를 기르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는 신앙인의 삶과 사유를 자극할만한 문학작품으로 엔도 슈사쿠의 ‘침묵’과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나탈리 배비트의 ‘트리갭의 샘물’을 꼽았다. “세상을 바꾸려면 나부터 깊어져야 합니다.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글을 읽으세요. 나와 다른 시선을 가진 문장이 내 속에서 자리 잡을 때에야 비로소 깊어질 수 있습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