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 악당 그리고 전기요금 개편

입력 2020-09-24 04:04

2019년 9월, 16살의 그레타 툰베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기성세대는 헛된 말로 제 꿈과 어린 시절을 빼앗았다. 미래세대를 계속 실망시킨다면 여러분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격정적인 연설로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줬다. 지구 평균 온도는 지난 1만년 동안 4도가 올랐는데 산업화 이후 100년 동안 1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올여름 중국 남부의 홍수, 일본의 물폭탄, 미국의 괴물 황사, 시베리아의 38도 폭염 등 기상이변이 전 세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도 역대 최장 장마를 경험했다. 우리는 지금 기후 위기에 산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 1인당 배출량 5위다. 지난 10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8.7% 줄어든 반면 우리는 24.6% 늘었다. 이대로라면 미래세대로부터 용서받기 힘들 것 같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기후 악당이라고 부를 만하다.

하지만 에너지 분야의 핫이슈인 ‘에너지 전환’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악당이라는 오명은 벗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현재 원전·화석연료 중심에서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친환경 전력생산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한 이해관계자 간 치열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또 한국전력 이사회는 하반기 중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을 마련하기로 논의했다. 조만간 전기요금제 개편이 여론의 장에 오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논의와 결정은 에너지 전환의 지속 가능성 확보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그렇다면 전기요금 체계에 우선적으로 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첫째, 미래세대를 위한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에는 비용이 수반된다는 시그널을 담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현재 전기요금에 이미 포함된 기후환경비용을 분리 고지하는 작업이 선행된 후 순차적으로 증가분을 투명하게 반영한다면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수월할 것이다. 그리고 신재생 발전비용의 하락 속도와 화석연료 사용이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신재생 확대에 따른 추가 비용과 이에 대한 국민 저항을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둘째, 최근의 연료비 하락분을 반영해야 한다. 지난 5월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연료비 변화를 최종 소비자 요금에 적정하게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전기요금의 경직성이 해소되고, 가격신호 제공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료비 상승기에 국민 부담 증가를 우려하지만 상·하한 캡의 설정, 유보조항의 탄력적 운영 등 보완장치를 통해 연료비 상승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

‘시불가실 물실호기(時不可失 勿失好機)’. 때는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으니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다. 코로나19와 수해로 실의에 빠져 있는 국민에게 유가 하락의 혜택을 돌려드리고, 미래세대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줄 준비의 시간을 갖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시기가 있을까.

이재희 정보전자공학과 국립목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