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시대다] 신데렐라는 처음부터 없었다

입력 2020-09-26 04:05
외롭고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는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났지만 신데렐라가 되어 행복하게 살지 못했다. 사랑은 현실 앞에서 흔들렸고 잘살아 보겠다는 꿈은 너무 먼 곳에 있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SBS, 2004년 1월~2004년 3월, 20부작)은 2000년대를 대표하는 트렌디 드라마이지만 가볍고 유쾌하고 감각적인 분위기의 사랑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계급 갈등, 가진 자의 위선, 가난한 사람들의 박탈감을 사랑의 순수함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2004년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은 네 젊은이의 치명적이고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재민(조인성)과 영주(박예진)가 인욱(소지섭), 수정(하지원)과 애정 관계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사각 로맨스다. 잔인한 계급 사회를 녹여내며 신데렐라 서사를 깨부쉈다는 평가를 받았다. SBS 제공

재벌 2세인 정재민(조인성)과 최영주(박예진)는 사랑을 위해 자신들의 특권을 포기하지 않았고, 천형 같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수정(하지원)과 강인욱(소지섭)은 먹고 살기 위해 뻔뻔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려 하지 않은 채 자기 욕망에 빠진 주인공들은 지상 최후의 낙원 발리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신데렐라 판타지는 거짓말이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재민과 영주가 인욱, 수정과 애정 관계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사각 로맨스다.

결혼을 앞둔 영주는 재민이 여배우와 스캔들을 일으키자 연인이었던 인욱을 찾아 발리로 떠났고, 약혼자 혼자 여행가게 했냐는 지청구를 들은 재민은 영주를 만나러 발리로 갔다. 갑작스러운 재민의 등장에 놀란 영주는 학교 선배이자 재민 회사 자카르타 직원인 인욱을 우연히 만났다고 둘러댔고, 얼떨결에 함께 발리 관광을 하게 된다. 이들의 여행 가이드가 수정이었다.

사고뭉치 오빠 때문에 지하단칸방 보증금 모두를 잃고 단돈 100만원을 들고 발리에 온 수정은 악착같이 일해 3년 만에 1000만원을 모았지만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 앞에 재벌 2세가 나타났으니 혹시 행운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을까 얄팍한 꿈을 꿔보기도 했다. 하지만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지 가진 돈 모두 사기당한 그녀는 빈털터리로 서울로 돌아왔다. 앞뒤 가릴 것 없는 그녀는 발리의 인연만으로 재민을 찾아가 취직을 부탁했고 오빠의 채무청산을 위해 3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창피함이야 눈 한번 질끈 감고 입술 한번 꽉 깨물면 된다고 생각했다. 수정의 당돌함에 재민은 황당했지만 묘하게 끌렸다. 부자 아버지 덕분에 부족한 것 없이 살면서 겉으로는 위세를 떨지만 실은 유약하고 소심한 사람이 재민이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세상 제일 두려운 존재였고,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아들을 애기라 부르는 엄마 앞에서는 영락없는 마마보이였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여자들과 노는 것으로 일관된 그의 하루하루는 그저 소비될 뿐이었다. 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어 보이는 그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은 수정이었다. 당차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재민과 영주 엄마는 수정을 ‘기생충’ 같다며 매몰차게 내쳤다. 내침을 당하긴 인욱도 마찬가지였다. 가진 것 없는 그에게 식구라곤 변두리 식당 주인인 보잘것없는 엄마뿐이니 영주의 집에서 인욱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

SBS 제공

“얼마면 되겠니?”라는 재벌가 해법이 등장할 즈음 보통의 신데렐라 판타지 드라마라면 재민이 개과천선하여 아버지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주도적으로 결혼을 강행할 것이다. 영주도 집안의 반대를 무릎 쓰고 인욱과의 사랑을 쟁취하면서 사랑의 순수함이 현실의 욕망보다 가치 있음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 가능성 희박한 사랑 이야기에 대중들은 감동했겠지만 ‘발리에서 생긴 일’은 그렇지 않았다.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신데렐라는 계모를 잘못 만나 고생했을 뿐 실은 왕자님 파티 초청장 정도는 받을 수 있는 귀족 출신이야. 그러니 부잣집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이야”라며 신데렐라에 대한 환상을 무참히 부숴버린 미희의 말처럼 갖지 못한 자의 절박함과 가진 자의 장난스러운 유혹에서 시작된 사랑은 자존심과 욕망의 경계를 넘나들었지만 현실의 영역에 발이 묶여있었다. 가진 것을 지켜야 하는 자나 살기 위해 무언가를 구해야 하는 자나 삶은 그저 고달팠다.

보이지 않는 계급, 사랑마저 욕망의 대상

재민이 인욱과 수정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했다는 결말 때문에 ‘발리에서 생긴 일’이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여전히 존재하는 계급이 만들어낸 사랑의 파국을 통해 21세기 자본주의 사회가 결코 달콤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과 보이지 않는 계급이 더욱 단단해질 것임을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예측은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재벌이나 권력자의 갑질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자본가가 아닌 이상 모든 노동자는 영원히 그들의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도 여럿 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본이 만들어낸 계급의 실체를 보면서 신분 상승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돈은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갔다.

드라마에서 계급 차이는 이들이 사는 집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수정과 인욱은 산동네에 살고 있다. 옆방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허름한 집이다. 출입문이야 서로 다르지만 별도의 건물이 아니니 옆집 사는 사이로 규정하기에도 민망한 옆방 거주자들이다. 심지어 수정은 그런 집조차 구할 여력 없는 더부살이 신세였다. 대기업 사원이긴 하지만 인욱의 삶도 녹록하진 않았다. 반은 유리, 반은 알루미늄으로 된 출입문은 방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단박에 알 수 있고, 열쇠로 잠긴 출입문은 누가 열어주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열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허술했다. 그러나 재민과 영주의 집은 다르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그들의 집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밖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고, 출입은 인터폰을 통한 허락을 필요로 했다. 재민과 영주의 방 한 칸이 인욱과 수정에겐 삶의 공간 전부였다. 이들은 모두 높은 곳에 살고 있지만 한쪽은 밀려서 밀려서 올라간 곳이고, 한쪽은 아무도 올라올 수 없도록 쌓아 올려 만들어진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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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나만 열심히 살면 뭐든 될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냥 되는 놈은 처음부터 돼 있고, 안되는 놈은 죽을 힘을 다해도 안되더라고요”라며 수정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굴레를 한탄했고, “살면서 뭐가 제일 무서운지 아냐? 희망이 없다는 것. 서른 되고 마흔 돼서도 시집도 못가고 연예계 취직도 못 하고 노래방 도우미나 하면서 그렇게 살면 어떻게 하냐?”라며 미희는 암울한 내일을 두려워했다. 인욱은 “계급은 중세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놈들의 헤게모니가 우리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을 뿐이지. 물론 그 이데올로기 안에서 행복하다면 할 말은 없지만요”라며 이탈리아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안토니오 그람시를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그는 투자 손실을 만회하려 자신을 이용했던 재민의 형 일민을 감쪽같이 속이고 3000만 달러를 챙겨 도망가는 것으로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을 마무리 지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사랑은 현실의 욕망을 뛰어넘지 못했고, 어느 누구도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지 않았다. 재민이 수정을 마음 안에 들여놓은 것은 인욱에 대한 질투였고, 영주가 인욱을 계속 만나는 것은 재민의 마음이 수정에게 향하고 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였다. 인욱과 수정도 재민과 영주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향해 갈등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원했던 사랑이 아니라 갖고 싶은 마음을 잠재울 수 없어 시작된 사랑은 욕망이었다. 인욱의 품에 안겨 재민의 총을 맞을 때 수정은 재민을 향해 사랑한다 말했지만 그 사랑의 실체는 모호했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면서도 수정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던 재민은 결국 모든 것을 파국으로 이끌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계급이란 화두를 수면으로 끌어올리며 신데렐라 판타지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판타지 드라마로 냉혹한 현실을 외면하려 했던 시청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헤게모니에 의해 가려진 눈을 뜨고 귀를 열라고 말하는 듯했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